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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29. 2023

이상한 위로

레이먼드 카버

책을 수집했던 건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에게 은 울림, 감동, 환희, 충격, 슬픔, 깨달음, 웃음, 치유의 원형들을. 그 매개체인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나는 사랑했다.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듯, 내 독서기억 차곡차곡 서가 채워 넣었다.



언젠가부터 책을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가지고 있는 책들도 야금야금 그 수를 줄였다. 어떤 책은 그것을 반길만한 지인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건네거나, 중고서점에 내다 팔았다.  



그건 아마도 모처럼 서가에서 그 책을 다시 꺼내 읽었을 때 내가 그걸 소장하고 있던 이유를 찾지 못해서인지. 뭔가크게 달라졌다는 걸 느껴서인지.(그것이 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간에.) 그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순히 가벼워지고 싶었던 걸까. 어찌 됐든,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책의 무게를 줄여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소장하고 싶다. 그의 책은 때때로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심정일 때 꺼내 보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엿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동요가 조금 잦아든다. 희망적이지도 작위적이지도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에 위로라도 받는 것일까. 이건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독서 경험이다.



처음 카버의 작품을 읽었을 때도, 그리고 여전히, 감흥이라는 것은 별로 없다. 드라마틱한 서사도, 아름다운 문장도 없다. 어떤 이야기는 극적으로 나아가다가 콘센트에서 코드를 뽑은 것처럼 툭 끊긴다.



그의 소설에 존재하는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연성, 즉흥성, 평범함, 찌질함, 지루함, 황량함, 취약함, 절망감, 알량함, 저열함, 냉정함, 열등감, 외로움, 분노, 권태, 후회, 공감, 딱함, 시기심, 치기, 본능. 것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코 남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지 못하는 낡고 먼지 쌓인 지저분한 일상의 속내, 녹슨 균열. 요즘말로 인스타그래머블한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의 것들 말이다.  미화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 예리한 관조의 시선이 있다.



얼마 전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많이도 울었다. 시대가 만든 비극과 부녀지간의 애환, 그리고 그들 곁을 지키는 정다운 이들. 이 아름다운 책을 두고 우리 독서회 멤버들과 경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끝에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뜬금없게도 "이건 판타지(fantasy)다"였다.


너~무 따뜻해,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어? 현실엔 이런 사람들이 없어.



그러니까 아무래도, 현실에는 레이먼드 카버가 있는 것 같다. 조금 씁쓸하지만 부정기 어렵다.


어떤 걸 읽든 텍스트를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데, 카버의 소설만은 예외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듯, 카페 유리창을 통해 피플와칭 하듯 그저 읽는다. 이 글의 교훈 따위를 고민하며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소설 속 이 사람도 되어보고 저 사람도 되어보다가,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떤 면을 발견한다. 내 가족 혹은 지인의 모습을 보기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읽었다, 이번 책도.

읽을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아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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