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Jun 20. 2023

해변에서의 하룻밤


주말에 뭘 할지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목요일 저녁이었던가. 리는 김치찌개를 냄비째 놓고 심상하게 밥을 먹는 중이었다. 다가오는 몇몇 일정(아버님 생신, 부서 회식, 골프라운딩 등)에 대해 이야기 공유캘린더 어플을 열어보니, 이번 주말 비어었다.


-데 우리 이번 주말에 뭐 하지?

-. 바다에 가서 텐트 칠까?

-날씨 괜찮아?


5월 중순이었다.


-응. 비 예보는 없네.

-그럼 가자.

-자고 올까?

-그럴까? 좋지, 재밌겠다.

-뭐 먹지?

-삼겹살이지! 라면이랑!



토요일 오후. 우리는 느지막이 에 도착했다.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그만 몽돌해변. 산책하거나 잠시 머무는 사람들, 차박이나 캠핑을 하는 이들 모두를 품어주는 작은 해안이다. 우리가 텐트를 세우는 동안 자매는 바다에 뛰어들어가 파도를 쫓아다다. 꺅-! 까르르- 새된 비명 끊이질 않는다. 신나는 놀이에 몰한 앙증맞은 강아지들이 따로 없다.



캠핑을 전혀 몰랐던 나는 지난 10여 년간 변했다. 그냥 같이 가주기만 해 달라던 남편을 따라 으로 바다로 다녔다. 처음엔 정말 손가락도 까딱 안 했었다. 자매가 아주 어렸을 때라 내가 아기들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했던 것도 맞지만, 남편은 뭔가를 펴고 접는 것에 있어서 자신만의 질서와 속도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테이블 같은 거라도 집어 들면, 어어 그냥 둬~ 아직 그거 아니야~ 저기 가서 앉아있어~하며 만류하는 식이었다. 조립에 젬병이고, 의도치 않게 물건을 파괴시키곤 하는 내 모습을 봐왔기에 불안하기도 겠지.



사람은 누구나, 의도하거나 말거나, 어깨너머로 배운다. 이제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싣고 내리는 대략적인 순서와 다양한 가방 속 내용물들의 정체, 텐트의 뼈대를 세우는 방식 따위를 대충 안다. 목장갑을 끼고 텐트 프레임의 R과 L을 살펴 배치한 뒤 천을 씌워 오늘 우리가 머물 공간을 만든다. 둘이 같이 하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일이다.



캠핑장이 아닌 장소에서 1박을 하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텐트 안에 들어가 누워 바다 쪽을 보니, 사각 프레임 안에 사진이 움직이는 듯했다. 끝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라는 영원한 피사체가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모래놀이에 여념이 없다. 그러고  모래놀이 장난감 째가 두어 살 때 해운대백사장 앞 편의점에서 산 것인데, 토록 오래 가지고 놀고 있다.



해가 기울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이들의 젖은 옷긴소매 상하복으로 갈아입혔다. 후리스를 한 겹 더 입히자, "아 이제 따뜻해-" 한다. 야외에서는 여러 계절의 옷이 필요하다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 잘 때 추울까 봐 잠자리에는 전기매트를 켜두었다. 이런 노지에서는 차박 때 쓰는 장비들이 유용하다.



버너에 불을 올려 고기와 소시지를 다. 밀폐용기에 담아 온 흰쌀밥 꺼내 녁을 먹었다. 에서  먹는, 특별할 것 없는 음식 야외에서 먹으면 별미가 된다. 내 것 같은 하늘과 너그러운 바람 덕분일까.



배를 채운 아이들은 텐트의 에어매트 위에서 방방 뛰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세수, 양치질.. 그런 것 뭐 하루쯤이야. 반주를 남편도 피곤했는지 일찍 잠들었다. 자가 된 나는 짙은 랜턴 불빛 아래에 앉다. 이블에 책을 올려놓고 다가 이따금씩 멈추었다. 바깥에서 작은 폭죽 불꽃이 팡팡 터지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의 음 희미하게 들려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파도소리도 커졌다. 한두 시간이 더 흘렀을까. 사람이 만들어 낸 인위적 소음은 사라졌다. 철썩철썩. 세상에 파도와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파도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잘 자는 듯했지만, 나는 어쩐지 잠을 조금 설쳤.




아침 6시에 남편은 조용히 텐트를 빠져나와 수영을 하러 갔다. 자신이 속한 바다 수영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그가 이곳에 온 내적 목적이었을 테다.) 해가 뜬 이후로 텐트 내부는 빠른 속도로 데워졌다. 7시눈을 뜬 아이들은 아빠와 수영하겠다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갔다. 다행히도 아직 수온이 차서 물에 뛰어들진 못했다.




아이들에게 달걀프라이를 만들어 주고, 뭍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걸 운동까지 했으니 허기져서 얼마나 맛있어?


그는 라면 국물 남김없이 마다. 냄비는 설거지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자매가 2일 차 모래놀이를 하는 동안 햇볕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파라솔을 펼쳐주었다. 나는 어린이들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딸들이 내 두 발을 모래에 파묻으며 즐거워했다. 까슬까슬한 모래의 질감이 피부의 감각을 깨웠다. 질간질. 의 감촉을 느끼고 싶어졌다. 적정 온도의 물 뛰어들고 싶는 충동.


-수영장에 갈까?


마침 첫째가 다니는 수영장이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수영장으로 가서 잠시 물놀이를 한 뒤, 상쾌하게 샤워를 다. 그리고 다시 해변으로.




아직 5월이지만 한낮은 뙤약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또다시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모래만 있으면 1박 2일 동안 싫증 내지 않고 놀 수 있다. 작년 한해의 야외활동으로 그을린 자매의 피부색이 이제 조금 원래의 톤으로 돌아왔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태닝이다. 




잠시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가 열기를 식혔다. 어른은 아이스커피를, 어린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바다에 오니까 너무 좋아! 엄마,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밤 더 자면 안돼요?





그 어느 주말보다 길게 느껴진 1박 2이었다.

좋은 계절 바다에서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일을 했다. 따로 또 같이. 내가 가장 좋았던 건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보는 일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땡볕아래에서 혼자 텐트를 접느라 땀에 홀딱 젖은 그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있었다. 역시 노지캠핑이 제 맛이라며.

수고했다고, 그의 등을 두드리며 집으로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또 밑바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