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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un 18. 2023

외모에 대한 그 어떤 발언도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 딸 살 좀 빠졌네~ 아이고 보기 좋다.

-가만 보자.. 사위는 좀.. 쪘나?

-엄마살 많이쪘제?그래도 이거 좀 빠진거다! 새 운동한다아이가~

-우리 손주 키 많이컸네! 반에서 니보다 큰애가 몇 명이고?

-우리 며느리는 얼굴이 와이리 핼쑥하노, 피곤하나?


부모님과 그들의 딸 사위 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4명의 손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어머님 생신. 자식들을 향한 외모 품평이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특별한 뜻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씀하시는 거라는 걸 안다. 이 쪘다 혹은  살이 빠졌다, 안색이 좋다, 키가 컸다 등등. 우리 사회에서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마치 날씨에 관한 스몰토크처럼 자연스럽게 나누는 말이지만, 나는 에 관해 꽤 민감한 편이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간에 말이다.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던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키와 몸에 관한 언급을 들어왔다.


-와, 키 진짜 크다(크시네요). 키가 몇이야(몇이에요)?

-근데 너무 말랐다. 밥을 많이 안 먹니?

-오 좋겠다 말라서! 근데 쪼금만 더 찌우면 딱 이쁘겠다.

-키 한 오 센티만 떼주라~

-키 커서 데이트할 때 힐은 잘 못 신겠네?

-남자친구가 너보다 커?



초등학생 시절에는 전봇대, 멀대, 심지어 이쑤시개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어린 나는 키 큰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사람들이 자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뭔가 이상한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어딜 가나 키와 몸이라는 외모로 주목받는 것도 싫다. 난 왜 이렇게 쓸데없이 키가 큰 거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낮아진 자존감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아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상대방이 칭찬으로 하는 말 어찌할 바. 모델해보라는 말 자주 들었는데, 어딘가 꼬는지 그게 나를 놀리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보기 좋게 낳아주신 신체조건을 감사히 여기며, 실제로 모델 같은 일을 시도라도 해볼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런 것이다.


-쌤 키가 몇이세요?

-선생님! 진짜 키 크시네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의 큰 키와 살 안 찌는 체질이 부럽다, 보기 좋다 하며 칭찬처럼 말을 건넨다. 그건 결코 기분이 상하는 말은 아니지만, 듣기 좋거나 달갑지도 않다. 나라는 사람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큰 키 이구나. 내가 가진 외모 말고 다른 걸 봐줄 수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인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고 말을 할 때 친절하고 다정하게 하려고 나름 노력한다. 만약 누군가가 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말씨가 다정하시네요-'라고 말해준다면 는 무척 기쁠 것이다.


-, 인사를 잘해주셔서 좋아요.  

-샘은 학생들을 존중해 주시는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들었을 때,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 중 다수가 외모에 관한 언급에서 비롯된다. 아직 전두엽이 덜 발달된 아이들은 사고과정과 여과장치를 생략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직관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또래에 비해 키가 많이 작은 친구를 '존만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그 키 작은 아이는 별대수롭지 않다는 듯 허허 웃어넘겼다. 살찐 친구를 일상적으로 돼지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스스로를 개그 소재로 삼아 웃기는 캐릭터였다. 자학적인 개그를 보고 웃던 아이들이 어느 날 도를 넘은 말들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당사자는 큰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친구 향해 찬사도 아끼지 않는다. 여학생들끼리소소한 이목구비부터 체형까지 신체 모든 면을 스캔한다. 남학생들끼리는 주로 큰 체구나 운동능력 방면의 관심이 지대하다. 노골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우월한 자는 의 중심에서 자신이 더욱 돋보일 방향을 끊임없이 찾을 테고, 주변부의 이들은 아마도 집에 가서 조용히 거울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 하면서.


요컨대 타인의 외모를 다루는 언급은 순기능보다 부작용 여실하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타인에 의한 평가라는 사실인 까닭이다. 내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영역에 관한 남의 지속적인 평가는 나 뒤흔든다. 예쁘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면 왠지 계속해서 더 예뻐야 할 것만 같고, 못났다는 말을 들어온 신체 부위가 있다면 가리거나 개선해야만 할 것 같 기분에 사로잡다.




언젠가 교실에서 '친구의 외모 말고 다른 좋은 점에 관해 써보기'제안했을 때 아이들은 한참 고민했다. 그건 누군가에게서 퍼뜩 보이지 않는  발견하면서 그이해해 보는 일이었다. 눈을 더 섬세하게 뜨고,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그런 예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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