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그들의 딸 사위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4명의 손주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어머님 생신날. 자식들을 향한 외모 품평이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특별한 뜻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말씀하시는 거라는 걸 안다. 살이 쪘다 혹은 살이 빠졌다, 안색이 좋다, 키가 컸다 등등. 우리 사회에서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마치날씨에 관한스몰토크처럼 자연스럽게 나누는 말이지만, 나는 이것에 관해 꽤 민감한 편이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간에 말이다.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던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키와 몸에 관한 언급을 들어왔다.
-와, 키 진짜 크다(크시네요). 키가 몇이야(몇이에요)?
-근데 너무 말랐다. 밥을 많이 안 먹니?
-오 좋겠다 말라서! 근데 쪼금만 더 찌우면 딱 이쁘겠다.
-키 한 오 센티만 떼주라~
-키 커서 데이트할 때 힐은 잘 못 신겠네?
-남자친구가 너보다 커?
초등학생 시절에는 전봇대, 멀대, 심지어 이쑤시개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어린 나는 키 큰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사람들이 자꾸 신기하다는표정으로 말하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뭔가 이상한 존재가 된기분이었다. 어딜 가나 키와 몸이라는 외모로 주목받는 것도 싫었다. 난 왜 이렇게 쓸데없이 키가 큰 거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낮아진 자존감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아서, 어른이 된 이후에도 상대방이 칭찬으로 하는 말에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델해보라는 말도 자주 들었는데, 어딘가 꼬였는지그게 나를 놀리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보기 좋게 낳아주신 신체조건을 감사히 여기며, 실제로 모델 같은 일을 시도라도 해볼 걸 그랬다고생각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런 것이다.
-쌤 키가 몇이세요?
-선생님! 진짜 키 크시네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의 큰 키와 살 안 찌는 체질이 부럽다, 보기 좋다 하며 칭찬처럼 말을 건넨다. 그건 결코 기분이 상하는 말은 아니지만, 딱히 듣기 좋거나 달갑지도 않다. 나라는 사람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큰 키 이구나. 내가 가진 외모말고 다른 걸 봐줄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인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고 말을 할 때 친절하고 다정하게 하려고 나름 노력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말씨가 다정하시네요-'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무척 기쁠 것이다.
-쌤,인사를 잘해주셔서 좋아요.
-샘은 학생들을 존중해 주시는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들었을 때,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 중 다수가 외모에 관한 언급에서 비롯된다. 아직 전두엽이 덜 발달된 아이들은 사고과정과 여과장치를 생략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직관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또래에 비해 키가 많이 작은 친구를 '존만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그 키 작은 아이는 별대수롭지 않다는 듯 허허 웃어넘겼다. 살찐 친구를 일상적으로 돼지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스스로를 개그 소재로 삼아 웃기는 캐릭터였다. 자학적인 개그를 보고 웃던 아이들이 어느 날 도를 넘은 말들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당사자는 큰 상처를 받았다.
아이들은 외모가 아름다운 친구를향해 찬사도 아끼지않는다. 여학생들끼리는 소소한 이목구비부터 체형까지 신체의 모든 면을 스캔한다. 남학생들끼리는 주로 큰 체구나 운동능력방면의 관심이 지대하다. 노골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우월한 자는 관심의 중심에서 자신이 더욱 돋보일 방향을 끊임없이 찾을 테고, 주변부의 이들은 아마도 집에 가서 조용히 거울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 하면서.
요컨대타인의 외모를 다루는 언급은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여실하다.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타인에 의한 평가라는 사실인 까닭이다. 내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영역에 관한 남의 지속적인 평가는 나를 뒤흔든다. 예쁘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면 왠지 계속해서 더 예뻐야 할 것만 같고, 못났다는 말을 들어온 신체 부위가 있다면 좀 가리거나 개선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언젠가 교실에서 '친구의 외모 말고 다른 좋은 점에 관해써보기'를 제안했을 때 아이들은 한참 고민했다.그건 누군가에게서 퍼뜩보이지 않는 면을발견하면서 그를 이해해 보는 일이었다. 눈을 더 섬세하게 뜨고,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그런 예쁨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