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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an 31. 2022

<계절 산문>, 박준

책 리뷰

  박준 작가의 책을 집어 들 때는 슬픔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마주할 것을 각오합니다. 그의 정서는 구체적으로, 때로는 뭉근하게 슬프거든요. 글 속에서 그의 슬픔을 인식할 때, 필연적으로 나의 슬픔이 미세하게 잦아드는 것을 느낍니다.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한달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계절 산문>이라는 이번 산문집은 많이 슬프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는 내 마음 상태의 반영일지도 모르지요. 이 책을 읽으며 , 한 달, 한 계절과 함께 무심히 흘러가는 내 마음을 뜰채로 건지듯 붙잡아봅니다.

봄의 스무고개와,
먹는 일이 사는 일이라는 말과,
부정확하게 말하기가 반가운 순간들.

이외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문장들이 허다합니다.


p.37

봄의 스무고개
여리고 순하고 정한 것들과 함께입니다. 살랑인다 일렁인다 조심스럽다라고도 할 수도 있고 나른하다 스멀거리다는 말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저물기도 하고 흩날리기도 하다가도 슬며시 어딘가에 기대는 순간이 있고 이내 가지런하게 수놓이기도 합니다.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잡으면 놓칠게 분명한 것입니다. 따듯하고 느지막하고 아릿하면서도 아득한 것입니다.

P.73
제가 어려서 보았던 공상과학만화에서 주인공들은 음식이 아닌 캡슐 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불고기맛 캡슐이 있고 우동맛 캡슐이 있고 딸기케이크맛이 나는 캡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래만은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혼자밥을 사 먹는 날이 이어지더라도 혹은 허기를 참고 있다 해도 이런 것은 반갑지 않습니다. 먹는 일이 곧 사는 일 같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에는 사는 일도 지겹고, 사는 일이 즐거울 때에는 먹는 일에도 흥미가 붙습니다. 이것은 저만 생각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국어사전을 보아도 '먹다'와 살다'는 이미 서로 만나 한 단어가 되어 생계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먹고살다.'
앞으로도 저는 낯선 식당들에서 자주 혼자 밥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꼭꼭 씹어 먹다가 저처럼 혼자 있을 법한 이에게 으레 전화를 한 통 걸기도 할 것입니다. ' 먹었어?'로 시작되어서 '밥 잘 챙겨 먹고 지내'로 끝나는 통화. 오늘은 무엇을 드셨을지 궁금한 밤입니다.

P.127
며칠 전 기념일을 맞은 부모님을 모시고 고즈넉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구름은 왜 하늘에 떠 있을까?”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말의 본뜻은 대기 환경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방금 식사를 한 식당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에 가까웠습니다. 그 말은 들은 어머니는 “그럼 구름이 하늘에 떠 있지, 땅으로 내려오냐” 하고 답을 했는데 이 역시 본뜻은 '오늘을 기념해주어서 고맙다'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두 분의 대화를 이어 구름과 수증기 그리고 강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쭙잖은 지식을 늘어놓은 제 말들의 본뜻은 '뭐 이런 것으로 고마워하시냐, 아무것도 아니다' 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어느새 한결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뜻은 말 그대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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