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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r 02. 2024

필요한 건 이미 다 갖고 있을지니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줍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요추 근처에 번개를 맞은 듯 날카로운 고통에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허리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감각에 서늘한 공포가 밀려왔다. 잠시 벽을 붙잡고 망부석처럼 서서 온 신경을 허리에 집중했다. 자칫 움직였다가 아까와 같은 고통이 다시 올까 봐 무서웠지만, 언제까지나 그러고 서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보았다. 악!!! 내 안에서 비상상황발생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에 떨며 허리 손으로 받친 채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침대로 가서 가까스로 몸을 뉘었다.


침대에 누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다. 지난 며칠 동 요가 수련을 하며 지나친 의욕을 발휘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허리를 뒤로 신전시키는 후굴 시퀀스를 하며 무리하게 버텼지.. 부장가아사나를 3단계까지 한 뒤, 낙타자세에서 뒤로 손을 뻗어 바닥을 짚으며 넘어갔었다. 좌우로 비트는 마리차아사나에서도 있는 힘껏 척추를 비틀어냈다. 내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소 필사적으로 동작에 임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요가를 했던가. 공감하며 읽었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책제목이 전광판 글자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남편이 내 허리를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뼈는 아니고 근육인 것 같다며, 자신이 다녔던 한의원의 침치료를 권했다. 다음날 아침, 힘겹게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집 앞 한의원에 갔다. 허리를 굽힐 수 없어서 세수는 언감생심, 한 손으로 세면대를 붙잡고 양치질도 겨우 했다. 세면대 앞에서 옷에 있는 대로 물을 튀기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 떨리게 무서웠다. 그렇게 난생처음 한의원에 가서 부항을 뜨고 침을 맞았다.  


한방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만 해서 무척 어색한 걸음걸이로 느리게 걸었다. 길가에 뛰어다니는 어린이들과 자연스럽게 빠른 걸음을 걷는 행인들이 부러웠다. 저 사람들은 허리 안 아파서 좋겠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허리가 건강해 보였다.

 갖고 있었기에 내가 가졌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다가 한순간 그걸 잃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건강은 그런 것이다.


나흘째, 통증은 한결 나아져서 이제 허리를 앞으로 조금씩 굽힐 수 있게 되었다. 오래갈 줄 알았던 증상이 생각보다 빨리 낫고 있다! 허리를 굽혀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돌아보면 삶에서 필요한 건 이미 다 내 안에 있었는데, 뭘 더 갖겠다고 그렇게 욕심을 부려왔을까.


당연한 건 없다고,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늘 말해왔는데. 뭐든 겪어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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