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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May 24. 2024

예민한 사람이라

HSP입니다

아침 요가 시간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련실의 열어놓은 창 밖에서 각종 소음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장 심했던 것은 90년대 인기 가요 메들리였다.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김현정의 다 돌려놔(?), 핑클의 블루레인. 오전 10시. 대체 누가 이런 노래이토록 크게 틀었을까. 근처에 있는 핸드폰 가게인가. 아니 요즘에도 이렇게 크게 음악을 재생하는 가게가 있던가. 이십 년, 아니 삼십여 년 전에 길거리에서  수없이 재생되던 노래들은 내 멱살을 붙잡고 과거로 끌고 가려고 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몹시 애썼지만 이미 내 마음은 번잡해졌다. 아 제발 그만..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노래 좀 꺼주세요 제발..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그다음으로 거슬렸던 건 근거리공사 소음이었다. 윙윙거리는 드릴 소리가 불규칙적인 빈도로 지속됐다. 그 소리는 며칠 전에 치과에서 받은 스케일링을 떠올리게 했다. 뾰족한 뭔가가 자꾸 나를 건드리는 듯한 감각에 몸이 움찔거렸다. 소리는 꽤 크게 들렸는데 선생님은 창을 닫지 않으셨다. 나는 요가 동작을 하며 주위 사람들을 흘낏거렸다. 다들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만 거슬리는 건가? 저 음악과 저 드릴 소리가 이토록 집중을 방해하는데, 어떻게 아무도 창문 닫을 생각을 안 하지? 손들고 선생님께 말씀드릴까? 그냥 내가 선생님 쪽으로 가서 창문을 닫아버릴까? 너무 돌발적인 행동일까? 조금만 더 참아볼까..

다행히 사바아사나 할 때가 되자 창문이 닫혔다. 휴우.






나에게 더듬이가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감각이 예민한 나는 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HSP(Highly Sensitive Persons, 매우 예민한 사람)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적잖이 반가웠다. HSP는 2006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가 제시한 개념으로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마치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와 같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그 책에 따르면 예민함의 종류와 방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나의 경우, 특히 소음에 민감하고 그로 인해 특정 사람이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투 목소리, 반복되는 행동과 같은 것들에 예민하다. 실내에 앉아서 뭔가에 집중할 누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다리를 떤다거나, 누군가 걸을 때 발소리를 크게 낼 때 몹시 괴롭다. 몇 년 전 교무실 옆자리 선생님이 실내화를 질질 끌며 어다니는 통에 1년 내내 무척 힘들었다. 누군가 반복적으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도 듣기가 힘들다. 싫은 소리도 잘 못해서 표현하기보다는 참는 편이다. 민하다는 티를 내거나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아서이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면서 삶의 질 크게 향상된 걸 느낀 나는 '요가할 때 에어팟 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아,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황당해할까.


2024.5.17.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전홍진 저



https://brunch.co.kr/@dearism/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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