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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Nov 12. 2022

11월의 어느 날

수능을 앞둔

어느새 11월, 다시 수능 철이다.

작년 수능 감독관으로 들어갔던 그 교실에서의 긴장감이 생생한데, 다음 주 목요일이 또 그날이라니. 체감상 6개월에 한 번씩 수능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  


우리 학교는 매년 수능시험장이므로, 11월 17일 그날을 위해 대대적인 교실 정비를 했다. 평소보다 공들여 쓸고 닦고, 책걸상은 4열 6석으로 줄 맞춰 놓고, 책상 서랍은 싹 비우고, 사물함도 모두 이동시켰다. 사물함을 들어내자 거미 두 마리가 은신처를 들킨 듯 우왕좌왕했다. 빗자루를 들고 있던 누군가가 거미를 쓰레받이에 조심스레 담아서 창밖으로 내보냈다. 게시판 부착물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급훈 교훈 액자, 거울, 공기청정기, 행거, 걸레 건조대 등 교실에 존재하는 모든 물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책상 위 낙서를 매직블록으로 지우고, 창틀과 벽도 닦았다. 그 지저분하던 교실이 말끔해진 걸 보니 마치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 나가는 날 같 기분이었다. 이 교실에서 시험 볼 누군가의 마음에 그 어떤 불편함이나 동요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교실 청소는 5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이 시간을 위해 따로 청소 구역을 정해서 학생들을 배치하지 않았다. 우리 반 22명이 다 같이 정돈하면 금방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실에 차출(?) 보낸 5명을 제외하고 17명이 우리 교실에 남았는데,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능동적으로 찾았다. '이거는 어디로 옮길까요 선생님?', '이 액자들도 다 제거해야 되는 거죠?' 하면서 책상을 딛고 올라서서 천장 가까이에 붙어 있 액자를 떼왔다. 벽에 낙서를 지우는 아이들은 페인트칠까지 벗겨낼 기세로 열심이었다. 나는 대형 쓰레기봉투에 사물함이 없어진 자리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다 쓸어 담았고, 걸레로 바닥의 얼룩을 닦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청소시간이야. 바닥 닦아야 하는데, 좀 일어날까"라고 낮게 말하자, 그들은 슬며시 일어나서 느릿느릿 교실 한켠으로 이동해서는 계속 핸드폰을 보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집에서 청소기 밀 때 소파에 앉아서 다리만 까딱 들어 올리다가 등짝을 맞는 얘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빗자루를 던져버리고 공동체 의식을 주제로 일장연설을 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할 일이 많아서 참았다.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교실에 있던 학급문고를 들고 교무실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어떤 학생이 불쑥 다가와서 빼빼로를 내밀었다. 말 수가 없고 고요하지만 성실하고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였다. 오, 이 빼빼로에는 뭔가 쓰여있었다!  반가워서 그 자리에서 읽어볼랬더니 그는 부끄러우니 제발 나중에 읽어주세요, 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이라니. 딱딱하게 덩어리 졌던 마음이 잘게 잘게 녹아내렸다. 그 큰 덩치가 귀엽고 그 마음이 사랑스러워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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