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10도까지 도달했던 한낮의 기온은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급격하게 떨어진다. 외투를 하나 더 겹쳐 입고 손난로 핫팩을 두개 뜯어서양주머니에 넣는다. 화로대에 피운 장작불 가까이에 의자를 놓고 앉으니 붉은 불꽃이 내뿜는 복사열이 아늑하다. 타닥타다닥. 새로 올린 마른 장작개비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먹이를 삼킨 듯 불의 위용이 커진다. 해가 지기 전까지 불 앞에서 책을 읽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캠핑의자에 앉아서, 가장 편한 자세의 각도를 찾아 여러번 고쳐앉는다.
팬히터를 작동시켜놓은 텐트 내부의 온도는 18도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온도차가 극심하다. 너무 차갑고, 너무 따뜻한 공기 사이를 들락날락할 때마다 호흡기를 비롯한 몸의 감각이 생생하다. 텐트 안에서 움직이다가 잘못하여 몸으로 히터를 툭 치거나 하면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면서 등유 냄새가 진동한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름 냄새는 어릴 적 부모님과 살던 집의 풍경을 곧바로 소환한다. 우리집 마루 한 켠에서 위잉 소리를 내며 따뜻한 바람을 토해내던 등유 난로를 떠올리다가, 이 냄새를 지속적으로 맡으면 건강에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퍼로 창문을 열어서 환기한다.
이번 겨울 캠핑에서 나는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양질의 수면을 경험했다. 저녁 식사 후 곧바로 졸음이 쏟아졌고, 잠시만 자고 일어나 책 읽어야지.. 하며 잠들었는데 깨보니 새벽 4시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취침하여 아침 9시에 느즈막히 일어났다. 그렇게 이틀을 숙면했더니 뭔가 분명히 회복된 느낌이다. 딱히 어딘가가 아프다거나 손상된 건 아니었는데, 컨디션이 이 정도로 좋아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캠핑와서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알람 따위는 꺼둔 채 그저 눈이 떠지면 일어난다. 씻고 싶으면 씻고, 씻고 싶지 않으면 안 씻으면 그만이다. 화장은 당연히 안 하고, 부스스한 머리는 질끈 묶는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하루에 수십 번 시계를 보며 출퇴근을 반복하는 평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흐른다. 금요일 오후에 조금 부지런을 떨면 퇴근길 목적지는 집이 아닌 캠핑장이 될 수 있는데, 그 순간 또 다른 시공간에 진입하는 기분이다. 도로에서 만나는 캠핑장 표지판이 나에게는 마치 '웰컴, 여기서부터는 another world 입니다'라고 읽힌다.
새벽 4시. 자다가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두 가지 현상에 충격적으로 놀랐다. 첫 번째는 영하로 떨어진 산속의 공기였다. 그것은 나의 데워진 뺨을 사정없이 감싸고, 내 따뜻한 폐 속으로 속수무책으로 들이닥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량감을 주었다. 두 번째는 새까만 밤하늘의 영롱한 별빛이었다. 숨을 더 잘 쉬기 위해 고개를 조금 들었을 때 내 앞에 우주가 있었다.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 그것들과 이토록 가까이 마주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헉 하고 탄식을 뱉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그 순간, 이유를 헤아리기 힘든 슬픔 같은 것이 몰려왔다. 슬픔인지 뭔지 정확히 판독하지 못했지만 그 감정은 갑작스러운 눈물을 동반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정적, 이미 소멸된 별이 미처 거두지 못한 빛의 흔적. 그리고 그 우주 속의 먼지 같은 나의 존재. 그 간곡한 찰나의 아름다움. 예기치 않게 극도의 아름다움과 마주할 때 어째서 눈물이 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더 오래 눈에 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추웠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다시 텐트 속으로 돌아와 따뜻한 전기장판 위의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1년 전, 브런치에 최초로 썼던 이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곳에 있던 나의 마음과 이것을 쓰던 나의 기분이 떠오릅니다. 고요하고 차분해 보이는 활자들 아래에서 실로 휘몰아치던 그 마음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영역이겠지요.
결과물이 어떠하든, 기록으로 남기는 건 내 마음을 지키는 한가지 방편이기에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