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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Nov 03. 2022

사랑이라는 말에

6살 둘째는 한창 글자를 읽는 중이다. 내가 첫째 아이를 관찰한 바, 한글을 익히는 패턴(단계)은 다음과 같다.


1. 본인 이름 읽고 쓰기

2. 자주 보는 사람들(유치원 친구, 가족, 친지)의 이름( 들어있는 글자)에 관심 갖기

3. 길거리의 간판이나 식당의 메뉴판 같은 곳에서 아는 글자를 찾아서 읽기

4. 그림책을 읽어줄 때 자기가 아는 글자가 나오면 반가워하며 읽기

6. 본인이 쓸 수 있게 된 글자를 써보이며(자랑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기

5. 가족이나 친구에게(맞춤법에 구애받지 않고)편지 쓰기



요즘 나의 둘째는 3번, 4번을 통과하는 중이다. 예컨대, 고깃집에서 '가브리살'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어? 엄마! 이거 앞에 글자 내 친구 가빈이 이름 같아?!" 라거나 '담배'라고 쓰여 있는 글자 중의 '담'을 가리키며 "엄마, 여기  이름이 있어, !!" 하는 식이다.


오늘 우리는 <단어 수집가>라는 책을 읽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내가 읽어 주었다. 이 책은 벌써 다섯 번 넘게 읽었는데도 계속 가지고 온다.


 로운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그것을 수집하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딸들은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수많은 단어카드 중에 본인이 아는 글자를 찾는 일을 몹시 좋아한다. 7세인 첫째는 이제 대부분 읽을 수 있지만, 6세에게는 아직 도전적이다.



나의 여섯 살 꼬맹이가 오늘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찾은 단어는 '사랑'이었다. 아이는 작고 귀여운 검지 손가락으로 반갑게 그 말을 가리키며, "사당!!" 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우와, 담이가 사랑이라는 말을 찾았네! 이 많은 단어 중에."


이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느닷없이 목이 메고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 만약 내가 너에게 더 이상 이 말을 들려줄 수가 없다면,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황망하고 무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의 쓸모를 모르겠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말에 나는 입을 떼고,

사랑이라는 말을 나는 집어먹는다.


그 대상을 상실한 누군가에게,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누군가의 슬픔에 나는 또다시 무력해고 만다. 마음으로 깊이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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