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이 되기 전, 어쩌다 보니 새해 달력을 3개나 구입한 욕심쟁이가 여기 있다. 나이는 한 번에 3배로 먹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2개까지야, 휴직할 줄 모르고 둘 중 하나는 사무실에 가져갈 생각으로 샀다지만, 그러고도 벽걸이 형태의 달력을 하나 더 구입했으니 엄마가 나중에 택배 온 걸 보시고는 헛웃음을 치셨다.
맨 처음 산 녀석은 내가 좋아하는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들이 그려진 일력이었고, 또 다른 탁상용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발간하신 책의 증정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구입한 벽걸이용은 사진이 너무 예뻐 책상 위 어딘가에 걸어놓고 싶은 욕심에서 꽤 오랜 시간을 벼르다가 할인한다는 소리에 드디어(!) 질렀던 지난날의 나. 새해가 되기 전까진 세 달력 모두 방 어딘가에 잘 보관해 놓고 나 몰라라 하다가 막상 2021년이 밝고 나니 그제야 그 많은 녀석들을 다 둘 데가 없어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달력 여러 개를 써야 할 만큼 일정이 많고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비슷한 용도의 물건을 이렇게 여러 개 재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넓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건 그저, 이것도 저것도 다 예쁘고 마음에 드니까 ‘내가 다 가질 거야’ 하는 욕심을 부린 거라고밖에 생각이 안 드는 상황이다. 그것도 동일한 용도인데 어디에 어떻게 쓸지, 이미 가지고 있는 건 어떻게 할 건지, 달력을 막 사들일 때는 생각도 안 해보고 밀어붙였다가 다 구입하고 난 그제야 고민하고 있는 대참사 상황.
궁여지책으로 메인이 될 벽걸이 달력은 책상 앞 액자 틈에 끼워 세워놓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탁상 달력은 책상 옆 책꽂이에 ‘수목금토’요일만 보이게 세워놓고, 카카오 프렌즈 일력은 좋아하는 동생에게라도 선물을 줄까 하다가 시기를 놓쳐 껍질도 못 벗긴 채로 탁상 달력의 바로 위 책꽂이 칸에 고이 모셔놓은 상태를 보다가 나 자신의 이상한 안간힘에 나도 모르게 짠하고 웃픈 웃음이 터졌다.
선필요 후구매가 아니라 선구매 후필요를 강요하는 지름신에게 도대체 몇 번째 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나의 자제력. 혹시 태어날 때부터 안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쯤 되니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 달력 삼 형제(?)가 가진 순기능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의 지름신 막기 기능. 괜히 사고픈 물건 혹은 오래 구경했던 물건이 있어 혼자 ‘히잉’거리다가도, 고개를 들면 떡하니 얼굴을 반밖에 못 내놓은 탁상 달력과 아직까지 새해 인사도 못한 일력 캐릭터가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만 같...)어서 우매한 자신을 혼내는 채찍질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달력을 3개나 살 열정으로 진짜 하루를 3배로 열심히 산다면, 쉬고 있는 이 6개월도 다시 일하게 될 6개월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훈훈한 마무리를 위한 작위적인 깨달음일까.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 쉬어가는 거 조금은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 매일을 그저 시간 가는 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요즘. 이렇게 쉬는 시간도 좋지만 진짜 내가 원했던 ‘쉼’은, 일하느라 바빠 챙겨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하고픈 것들을 하며 스스로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거라는 생각이.
그러니 내일은 세상에서 가장 용한 ‘지름신’을 모셔다가 하루를 3배로 잘 놀아봐야지. 어떤 하루가 주어지는지가 아니라 그 하루를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한, 그런 매일매일을 온전히 선물로 받은 요즘이니까. 그러지 못해 어영부영 시간을 잃어버린 내가 올해 연말 책장 모퉁이에 서서 얼굴을 반만 내밀고 카카오 프렌즈처럼 지금의 나를 째려보고 있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