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음 Feb 02. 2021

엄마가 둘러준 목도리

이제는 조금, 가벼워져도 괜찮아.

 # 어린 시절의 나는 자주 아팠다. 몸이 허약해서인지 조금만 추워지면 경기를 하며 쓰러졌고, 엄마는 그렇게 입술이 시퍼레진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쫓아가기 바빴다. 폐렴과 천식도 있어서 잘 때면 쌕쌕거리는 소리를 냈고, 감기는 늘 달고 살았으며, 그래서인지 내 유년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병원에 간 기억이 더 많다.


 잔병치레가 많고 유약한 둘째 딸이 걱정이었던 엄마는, 겨울이면 늘 나를 꽁꽁 싸매서 눈사람처럼 만들고 나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의 겨울 사진들은, 실내가 아니면 거의 다 얼굴이 눈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이었는지, 아님 시간이 지남에 따른 자연적 치유였는지(혹은 둘 다였는지 모르겠지만) 성장하면서 나의 허약한 체질은 많이 나아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정상인(?)에 가까운 몸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역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지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가 나를 싸매 줬던 것처럼 나 자신을 과보호해 오고 있었다.


 # 2주 전, 건강검진센터에 종합검진을 예약하면서 나는 대장내시경만 따로 떼어 다른 날짜에 따로 받겠노라고 얘기했다. 그에 따라 다른 검진들은 다 오늘 끝내고 수면 내시경을 해야 하는 위와 대장내시경만 이틀 뒤에 진행하기로 예약이 되었다.


 그렇게 예약을 한 이유는 하나였다. 검사 하루 전날 저녁부터 장 정결제를 먹고 속을 비워낸 뒤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오전 내내 검진받을 자신이 없어서. 혹시나 빈속에 물도 마시지 못한 몸이 꼭두새벽부터 반나절이 걸릴 종합검진을 버텨내지 못하고 쓰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 대학생 시절, 귀가 아파 이비인후과를 찾았다가 의사의 지시대로 물을 안 마시고 다음날 오전에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날이 더웠던 것도 큰 몫을 했겠지만, 나는 그날 오후에 결국 탈수가 와서 쓰러졌다. 도와줄 사람이 옆에 있었기에 큰 사고 없이 병원으로 옮겨져 수액을 맞고 괜찮아졌지만, 그건 또 하나의 충격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레 겁을 먹고 건강검진 일정을 나누어버렸던 건. 그런 결정을 한 나 자신에 대해 잘했다고 생각했던 예약 당시와 달리, 별로 길지 않았던(2월의 검진센터는 그렇게나 한산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검사 일정을 마치고 나서는 나는 내가 스스로를 과보호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늘 그래 왔다. 우리 집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관계로, 겨울이면 늘 집안이 더 추운 편이고 어둡다. 그래서 나가기 전에 옷을 고를 때면 늘 고민하다 결국은 바깥 기온보다 훨씬 추운 날씨를 예상하고 옷을 껴입는다. 그리고 나가서 후회한다. 그러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 다음엔 꼭 일기예보 온도를 믿는다 진짜. 담엔 옷 좀 가볍게 입어야지.’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도 이 순서를 무한 반복한다.


 # 물론, 남들보다 그리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닌 걸 알기에 스스로를 잘 보호할 필요와 의무가 나에겐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한 번씩은 어쩌면 일탈 같더라도 그 보호를 풀어볼 필요 또한 있음을 깨닫는다. 나 자신에 대한 보호가 때로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그게 때로는 강추위에 코트를 입고 벌벌 떠는 일처럼 시련 앞에 서는 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서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엄마가 둘러줬던 그 목도리는 참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러나 그 기억이 너무 안온해서, 나는 이제 그 목도리가 없어도 괜찮을 만큼 성장했다는 걸 잊고 살았나 보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더 가벼운, 내게 맞는 마음과 옷차림으로 길을 나서야지. 그 안온함에 묻혀 시련 앞에서 고개를 파묻는 꼬맹이로 남아있기엔, 이제 내게 남겨진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추위도, 시련도 모두 나의 방식대로 겪어내고 떠나보낼 때, 그때에야 나는 진정 어른이 되어 지난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이에게 목도리를 둘러줄 수 있으리라.



 글을 매일 올리기로 스스로와 했던 약속은 1월을 끝으로 조금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글감이 마음 속에서 무르익어 어떤 이야기든 꺼내놓고 싶어지면 그때마다 글을 쓰는 것으로요.

 매일 글을 쓰는 건, 어떻게든 악착같이 그 임무(?)를 완수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뿌듯함, 용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그게 너무 큰 중압감으로 다가와 지금의 저에게 필요한 '휴식'을 온전히 취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도 해요.

 마음을 버티게 해줄 자원이 많지 않은 지금은 글쓰기라도 즐거움으로만 남겨 놓고 싶어 이렇게 약속을 번복하게 되었습니다. 자 한 약속이라도 번복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또한 저 스스로의 일기 같은 기록임에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저 바다에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