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봄 May 23. 2024

제제를 닮은 아이들, 착한 사람이란?

"엄마, S 진짜 착해."

"어떤 면이?"

"음…. 오늘 나한테 음료수 쏟고 도망가서 속상했는데."

"그건 착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근데 다른 땐 진짜 착해."


"그럼 D는? 축구하는데 공을 자꾸 패스 안 해서 화났다던?"

"어, D도 착하지."

"어디가?"

"가끔 답답하게 굴긴 하는데, 여하튼 착하긴 착해."


아들은 종종 아리송한 이야기를 한다. 장난꾸러기 친구 때문에 짜증이 났다면서도 대부분의 친구들을 '착하다'며 치켜세운다. 호기심이 동해 넌지시 캐물으면 '여하튼, 그냥'이라는 김 빠지는 말로 매듭지으니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 주인공인 제제. 장난이 지나쳐 도무지 착하다는 평판과 거리가 먼 이 꼬마가 좋아서 블로그 닉네임도 제제였다. 제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친절하지만 못 생겨 인기가 없는 세실리아 선생님의 빈 화병에 꽃을 꽂아드리려고 남의 집 정원에서 꽃을 꺾는 제제를 어떻게 나무랄 수 있을까? 더 가난한 아이를 위해 선물을 양보하고 장난이 심해 매질을 당하면서도 어른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제제를 보며 자주 울었다. 제제를 만난 후 선과 악, 추함과 아름다움, 아이와 어른을 구분했던 내 안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한 사람 안에 그토록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제제를 떠올리다 '착하다'는 아이의 말을 나만의 해석을 담아 풀이하니 이랬다.

장난꾸러기에 가끔 못되게 굴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란 의미가 아닐까 하고.




아이의 생각은 엉뚱하지만 따스하다. 세상의 기준을 살짝 비켜간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날엔 미겔 탕코가 쓰고 그린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을 펼친다.


쫌 이상한 사람들


세상에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씁니다.


개미에게 길을 양보하고 혼자라고 느끼는 이를 내버려 두지 못하는 사람, 자기편이 져도 상대의 승리를 기쁘게 축하하고, 가끔은 그저 자신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춤을 추고 싶을 땐 아무 때고 추며, 자연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고 돌보는 일을 즐긴다.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기준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한참 책에 빠져 너무 좋은 그림책이라며 7살 둘째에게 읽어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잖아!


아이의 눈엔 지극히 당연한 사람들이란다.

그럼 제목을 '너무 당연한 사람들'이라고 바꾸는 게 어떠냐는 제안까지~ 푸하하하! 제제를 닮은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구나 감탄하며 행복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를 뿐!

꽃을 두고 왜 이런 모양과 빛깔인지, 계절마다 피는 자리와 모습이 다른지 이유를 따져 묻지 않듯 사람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우면 좋겠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다. 가끔 '해야만 할 것 같은'과 '하고 싶은'이 다투는데 이때 나는 '쫌 이상해지기'로 마음먹는다.


쫌 이상한 사람들


눈을 크게 뜨고 꿈을 꾸는 이상한 사람들처럼.


잔뜩 굳은 어깨가 내려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는 신호다. 기막힌 타이밍에 질문카드를 꺼낸다.


이제 너의 두려움과 소망을 이야기해 줄래?

대부분 '하고 싶은'이 판정승으로 이긴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괴로움을 데려올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괜찮아.
네게 바라는 대로 자유로워지길.



작가소개


글.그림  미겔 탕코


어린이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 책을 읽으며 이미지에 매료되었고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공부하였다. 지금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워크샵을 운영하며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이전 06화 사랑이 있어 태어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