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랗고 뾰족한 코, 거구의 몸집을 한 남자가 아이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책상이 놓여있고, 눈을 감은 아이의 몸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혼나는 듯 보이는 이 장면은 존 버닝햄의 그림책 《지각대장 존》의 표지 그림이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역할을 바꿔가며 여러 번 읽었던 그림책이다. 나는 지각대장 존이 되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되었던. 읽을 때마다 아이들은 웃고 나는 부러 우는 얼굴을 지어 보였던 책.
책 속 주인공인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제목처럼 지각대장이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마다 방해꾼이 나타난다. 어느 날은 하수구에서 악어가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물고, 덤불에서 사자가 나와 바지를 물어뜯는가 하면, 커다란 파도에 밀려 지각한다. 존은 늦은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혼자 남아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쓰고, 교실 구석에 서서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400번 외치고, 교실에 갇혀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500번 쓴다.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하면 회초리로 때려 주겠다는 말과 함께.
넷째 날, 여느 때처럼 학교로 가는 존,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장을 펼치는 순간,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반대 방향으로 걷던 존이 자신을 좀 내려달라는 선생님을 향해 말한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목구멍에 걸린 체증이 내려가듯 후련했던 장면이 요즘은 조금 쓸쓸하다. 어쩌면 그건 존의 무덤덤한 표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진실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진실이란 뭘까?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길을 헤맬 때마다 자주 찾는 문장이 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말 중에서 -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존이 선생님께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진실 혹은 거짓 너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 그 무엇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마도 그건,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세심한 마음. 주파수를 맞추려는 노력과 존중, 이해의 바탕 위에 조용히 쌓여가는 투명한 무언가일 것이다.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지만, 사는 동안 괜찮다고 여긴 날보다 별로일 때가 더 많았다. 나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 때마다 듣고 싶고 또 들려주고 싶던 한 마디,
네가 그랬다면 이유가 있을 거야.
믿어주는 마음.
사랑이 있어 태어난 마음.
나 또한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존재를 온전히 껴안는 이해의 말!
학교 가기 싫다며 우는 얼굴이 되는 아이를 떠밀지 않고, 안아주고 뽀뽀하며 말했다.
"가기 싫은 그 마음, 엄마도 알지."
"데려다줄까?"
(안 가도 괜찮다고 말하길 기대하는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
"그냥 갈게. 특별히 가주는 거다~! 엄마 다녀올게요."
가겠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내내 이렇게 말해줄 거야.
너를 믿는 단 한 사람이 될 거야.
작가소개
글. 그림 존 버닝햄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1963년 첫 번째 그림책인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로 영국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주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으며, 1970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같은 상을 한 번 더 받았다. 간결한 글과 자유로운 그림으로 심오한 주제를 표현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