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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봄 Apr 26. 2024

마음이 원하는 만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는 대부분 이렇게 끝났다. 착한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내고 왕자(사랑하는 존재)와 결혼 후 행복해지는 결말들! 부모라는 생생한 케이스를 지켜보며 살았음에도 어떤 사랑과 결혼은 '영원히 행복하게'로 이어져 '살았습니다'에 마침표를 찍는 미래를 상상하며 자랐다.


적어도 나의 결혼과 사랑은 조금 다른 모양일 거라 믿고 싶었다. 결혼은 현실이지만 이상적인 결혼과 사랑이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을 거란 기대, 내가 그 증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바람.


봄날처럼 설레던 사랑은 벚꽃처럼 후루룩 떨어져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서로를 향하던 궁금증이 사라지니 일상의 대화는 먹고사는 일들로 채워진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사는 것만 같아 답답하던 날에 그림책이 말을 걸었다.




행복한 질문


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오나리 유코의 그림책《행복한 질문》, 강아지를 의인화한 만화를 주로 그린 작가는 이번에도 강아지 부부를 통해 결혼의 의미를 되묻는다. 첫 장을 펼치면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이 등장한다. 식탁 장면, 아내가 두 손으로 턱받침을 한 채 식사 중인 남편에게 묻는다. 


“있잖아.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내가 시커먼 곰으로 변한 거야.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아내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말한다.


“그야… 깜짝 놀라겠지. 그리고 애원하지 않을까? 제발 나를 잡아먹지 말아 줘. 그런 다음 아침밥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볼 것 같아. 당연히 꿀이 좋겠지?” 


이런 질문들… 문득 우리 남편은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서 물었다. “신랑 있잖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곰으로 변해 있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피식 웃더니 “그럼, 얼른 도망가야지. 위험하니까. 애들 데리고…”“그 곰이 나인데도?” “ 그래도 곰이랑은 말이 안 통하니까. 잡아먹으면 어떡해.” “으이그!!” 역시 예상과 꼭 같은 대답, 신랑다운 대답이라 한숨이 나왔다가 웃음이 터졌다. 신혼이라면 엄청나게 실망하고, 이 사람이랑 몇 십 년을 함께 살 수 있을지 고민했을 테지만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을 내놓았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후에도 그림책 속 아내는 남편에게 ‘만약에…’로 질문을 이어간다. 그림책의 중간쯤 아내가 물었다.



“나 사랑해?”

“사랑하지” 

단순하게, 담담하게 주고받던 사랑의 속삭임.

뽀뽀.

그리고 마지막 물음.



내일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럼
전망 좋은 언덕에
침대를 옮겨 놓고
뒹굴뒹굴하면서
하루종일 당신과
뽀뽀할 거야.


책을 읽으며 '이 부부는 참 좋겠다. 예쁘다.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세월에 닳아 빛깔이 바랜 사랑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더는 설렘이 아니어도, 의리나 연민으로 불리더라도 그것이 여전히 사랑이길 바라는 건 여전히 사랑이 고프기 때문일 거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마음의 크기를 재지 않고, 주고 싶은 만큼 또 받고 싶은 만큼 나누고 채우고픈 욕심이 차오른다.


아무 말이라도 하고픈 날, 남편과 식탁에 앉아 와인과 안주를 앞에 두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장면을 상상한다. 말하지 않으면 영영 알지 못할 마음들도 있다고 믿기에. 스무 살 적 알콩달콩한 설렘도 좋지만, 책 속에서 지난여름 말려둔 꽃잎을 발견한 듯 서로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표현하고 산다면 인생이 더 만족스럽지 않을까?


오늘 저녁은 남편 핸드폰 아래 이 그림책을 슬쩍 놓아둘까? 밥을 먹을 때, 잠자리에 누울 때 “있잖아. 만약에…”로 말문을 열고, 이 순간만은 아이 이야기 대신 서로만을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이제 당신이 없으면, 나는 못 살 것 같아.”라든지 “당신이 곁에 있어 든든해.” 같은 쑥스럽지만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말들을 꺼내 봐야지. 분명 우리 신랑은 “와 그라노(경상도 사람이다ㅋ)”라며 무뚝뚝한 한 마디를 내뱉겠으나 그럼에도 잠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작가소개


글.그림  오나리 유코

일본의 인기작가 겸 만화가. 1965년 태어나 십 대 때부터 만화가로 활약했다. 90년대 초 강아지를 의인화한 그녀만의 독특한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해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펴냈다. 이 책은 97년 신초사에서 출간된 직후 젊은 여성들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선물 책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가끔 작사가로도 활동하고 있기도 한 그녀의 다양한 이력은 홈페이지 http://www10.plala.or.jp/Blanco/에서 볼 수 있다. 작품으로 <나의 사랑하는 개 모모> <손바닥 동화> <숨결> <행복한 입사귀> 등 3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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