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나이가 지긋한 임금님이 살았는데 늘그막에 딸을 하나 낳았어.
임금님은 그 딸을 너무너무 사랑했지.
공주는 예쁘지는 않지만 못생기지도 않았고,
착하지는 않지만 못되지도 않았고,
똑똑하지는 않지만 멍청하지도 않았어.
임금님은 생각했지.
모름지기 공주라면 더 예쁘고, 더 착하고, 더 똑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공주는 대체 누구를 닮았을꼬?
평범해, 평범해. 공주가 평범해.
임금님의 시름은 깊어만 갔어.
그의 한숨 소리가 어찌나 길고 깊던지 연못의 잉어를 깨웠지 뭐야.
잉어는 소원을 들어주는 수염 세 가닥을 주며 말했어.
수염 하나에 소원 하나씩!
하지만 잊지 마세요.
소원을 빌 때마다 임금님은 늙고 쭈글쭈글해질 거예요.
임금님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너무너무 예쁘고, 너무너무 똑똑하고, 너무너무 착한 공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결국 공주와 임금님 모두 행복해졌을까?
B급 코미디 영화라 폄하도 받았던 주성치 감독의 영화 <쿵푸허슬>에도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 싱은 폭력 조직 도끼파를 선망하여 도끼파인 척 빈민들이 사는 돼지촌에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자신은 도끼파 두목이니 나와서 대결해 보자며 가장 약해 보이는 이들을 골라 싸움을 건다.
하지만 이게 웬일일가? 평범한 아주머니의 핵펀치에 쌍코피가 터지고, 꼬마 아이는 근육남이며, 키작남은 알고 보니 거인이다. 쌀집총각, 세탁소 주인, 돼지촌 주인부부 등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무림계의 숨은 고수일줄이야! 이 영화를 자주 꺼내보는 건 꼭 필요할 때만 비범함을 드러내며 그저 자기 삶의 주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너무너무공주>와 <쿵푸허슬>을 볼 때면, 내 안에 이 문장이 물음표와 느낌표를 달고 떠오른다.
한때 나의 평범함이 초라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든가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같은 책 속에 답이 있기라도 하듯, 아직 긁지 않은 복권처럼 내 안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범함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인생의 시간을 반바퀴쯤 돌고서야 깨달았다. 평범함과 비범함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세월의 나이테를 부지런히 만들며 살아낸 분들의 평범함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것을 삶이 가르쳐주었다. 혹여 인생의 길목에서 이 문장과 닮은 분들을 만나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매해 자라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살구나무가 그토록 특별해진 건 나무와 꽃들을 유심히 살피며 눈길을 주던 H 선생님 덕분이다. 러셀처럼 자기만의 빛을 밝히며 앞장서 걷는 J 작가님, 한 사람을 향한 다정한 눈길에 꽁꽁 언 마음도 금세 녹여버리던 H 작가님, 회사와 가정 사이에 균형을 지키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나의 남편 M, 진짜 친절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가르쳐 준 J 선생님과 더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B 수녀님, 이 분들처럼 세상에 반짝이는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이 꿈틀댄다. 이토록 평범한 나로 가능할까란 물음이 맴돌았는데 '평범하고도 특별한'의 단어가 이룰 수 있는 꿈이라 말해준다. 언어의 힘을 믿는 나는 이 단어 앞에 안도한다.
너무너무공주처럼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하고
몸과 마음이 하라는 대로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언젠가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나로 살아갈 수 있겠지.
상상이 현실이 되는 꿈을 꾼다.
가슴이 뛴다!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