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기록하다 보니 그동안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저녁으로 기록하는 하루는 그전의 하루보다 길고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는다.
어느 좋은 순간 사진을 찍듯, 어느 순간 떠오른 생각을 적는다. 사진을 찍어놓고 매일 같이 들춰보지 않듯이 하루를 기록하면서 이걸 내가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마음에 주문을 외우는 기도처럼 아침 일기는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식을 치르고 있는 날이 벌써 2주가 돼간다.
최근에 Habit 이란 책을 읽었다. 하나의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 여러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2주는 새로운 습관이 자리잡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이 깼다. 비몽사몽으로 양치를 하고 물 한잔 먹고 잔잔한 이루마의 피아노 곡을 틀어놓고 여기저기 뭉친 근육을 풀고 나서 보리차를 타고 이렇게 아침 일기를 쓰고 있다.
예전엔 6시간 30분 이내로 자면 피곤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특히 6시간 아래로 수면시간이 줄어들면 '오늘 피곤한 하루가 될 것이 분명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샌 5시간 30분, 5시간 40분 정도 자는 날이 계속되는데도 예전처럼 너무 피곤해서 큰일이다라는 느낌이 없다.
물론 잠이 줄어들면 저녁쯤에 더 많이 피곤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잠이 더 잘 들고 저녁에 더 놀고 싶은 의욕이 떨어진다. '이렇게 피곤한데 차라리 일찍 자서 내일 더 일찍 일어나 좀 더 상쾌한 내 시간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꼭 피아노를 15분이라도 연습하고 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연습해놓았던 그 곡들이 이렇게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욕심 내지 말고 연습했던 것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만 하자.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는 새 책을 오디오북에 담아놨다. '내 삶도 에세이가 될까'라는 책이다. 내가 나에게 묻는 질문과 같은 제목이다.
예전에는 책이라는 건 '특별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 소감으로 인용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나의 삶도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내 생각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지지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