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이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헌법에도 '행복 추구'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럼 행복은 무엇일까? 40년을 살았지만 막상 답하려고 보니 막막하다. 나에게 행복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행복은 감정의 일종일까? 아니면 어떤 꿈을 실현하는 것일까? 추상적이면서도 굉장히 개인적이다.
저자는 '행복이 왜(WHY) 인간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저자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먼저 '왜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가'를 알아야 행복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 되는 행위를 할 때 켜지도록 뇌에 설계된 '쾌락 스위치'이다.
저자는 생존과 번식에 이로운 행동을 할 때 뇌에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감'라고 말한다. 따라서 행복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며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 스위치는 '파블로프의 종을 울리면 침을 흘리는 개'와 같이 식욕, 성욕 등 1차원적인 욕구에 설치된 것이 아니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기여한 핵심 요소인 '사회성'을 극도로 발전시켰고, '사회성'을 활용하여 결국 지구를 정복했다. 인간의 행복의 스위치는 바로 '사회적 욕구'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문득 차를 마시며,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기술이 발달해서 더 자극적이고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우린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느낀다.
생존을 위해 인간의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
행복의 느낌이 길게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생존을 위해서 행복은 곧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원시 시대에 오늘의 행복에 안주하다간, 내일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에 나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행복감은 아이스크림이 녹듯 사라져야 하고, 인간의 뇌 속에는 냉장고가 없다. 아무리 감격스러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되어 희미해진다. 연구 결과 약 3개월 정도까지의 경험만이 현재의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한편, 우리의 감정은 상대적인 특성이 있어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그 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복권 당첨과 같이 일확천금의 큰 기쁨(자극)을 경험하고 나면 '행복의 더듬이'가 무뎌져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한방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돈, 물질 등 외적인 삶의 조건은 행복과 마찰을 일으킨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타인은 나의 불충분함을 메워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위험한 외부 환경에서 나를 보호해줄 안전장치는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사람'에게 중독되도록 설계되어있다.
하지만 문명사회로 접어들면서 '돈'이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돈을 추구할수록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돈은 사람에게 자기 충만감이란 우쭐한 기분이 들게 하며, '너희가 없어도 난 혼자 살 수 있어'라는 느낌을 준다.
또한 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때문에 돈은 소소한 즐거움을 마비시키는 특별한 효능까지 있다.
문득 오징어 게임에서 가슴을 울렸던 오일남의 대사가 떠올랐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사람들은 돈이 내가 당면한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니기 싫은 직장도 때려치울 수 있게 해 주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돈은 속박을 끊어내고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돈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착각을 주며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들을 빼앗아 간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 '깐부' 편에서 오일남은 어릴 적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면 신나게 놀았던 경험을 다시 해보며 행복해한다. 어린 시절의 '생존 게임'에서 서로를 끝까지 책임지는 '깐부' 친구와 우정을 떠올리며 기훈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
전 세계가 그토록 오징어 게임에 열광한 것은 바로 우리가 잊고 있던 그 '행복 스위치'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인생은 상상하는 것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복권에 당첨된다고 해도 상상하는 것만큼 행복해지지 않는다. 어떤 나쁜 일을 겪어도 마찬가지로 상상한 만큼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돈을 충분히 모으고 자유를 얻으면 상상하는 것만큼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지금의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상상하는 것만큼 불행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을 충분히 모아도 기대한 만큼 행복해지지 않고,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도 걱정했던 것만큼 불행하지 않는다는 말에 용기가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일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하다'. 그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행복의 총량'이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긴다.
또한 행복이라는 것이 미래에 어떤 무엇을 성취한 후 보상으로 크게 받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일상에서 작은 기쁨으로 느끼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에 오늘의 작은 기쁨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한 기분으로 차를 마시며 생각에 빠져 글을 쓰는 지금 즐겁다. 이 즐거움이 오늘 내가 누리는 행복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다행스럽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