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그 정도는 좀 참으세요
1. 주문한 책의 표지 귀퉁이가 조금 찢어진 채로 배송되었다.
2. 코팅되지 않은 얇은 종이 표지였는데, 아마도 약간 밀려 올라간 상태에서 배송되다가 모서리 부분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찢긴 것 같았다.
3.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자 있는 물건을 받았다'는 불쾌감이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출판사에 불만 접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 게을러서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미적대다가 출판사의 SNS에서 '잘 받아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커버를 쌌어요'라고 담당자가 올린 글을 읽었다.
5. 곧이어 또 다른 곳에서 '우리가 너무나 완벽한 상품을 원하는 나머지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상품이 버려진다'며 문제를 지적한 글도 보았다.
6. 그러고 나서 다시 책상 위에 놓인 귀퉁이가 찢어진 책을 보니, 갑자기 저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은 것이다.
7. 사실 나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B급 상품을 좋아한다.
8. 못생긴 채소, 얼룩이 있는 대나무 칫솔, 자투리 비누에 열광하며 이런 것들을 살뜰히 살피는 브랜드에 더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9. 그런데 내가 '제 값을 주고 산' 제품이 약간 찢어진 것에 대해 영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서 뒤늦게 뜨끔했다.
10. 본질에 문제가 없는 작은 흠에서조차 자동반사처럼 거부감을 느끼게끔 '소비자는 왕', '완벽한 제품 경험' 따위의 말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