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넓은 세상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

by 케잌

1. 10센티가 훌쩍 넘는 힐을 신고 뛰어다니던 때가 있었다.

2. 그때 발목이 똑 부러지지 않은 걸 감사하며 살고 있다.

3. 30대 중반부터 굽은 점점 낮아져서 바닥에 닿았다가 살짝 반등하여 지금의 높이에 정착했다.

4. 길바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얇은 플랫도 발이 아프기는 매한가지여서 약간의 쿠션은 있되 굽은 하나도 없는 신발이 최고라고 결론 내렸다.

5. 굽 높이와 더불어 내 발을 괴롭혔던 건 신발 사이즈와 앞이 뾰족한 모양이었다.

6. 지금이야 사이즈가 큰 신발도 무리 없이 구할 수 있지만, 한참 힐을 신고 다닐 땐 250은 대부분 주문제작을 했어야 했다.

7. 주문하기 번거로운 것도 그렇고, 발 사이즈가 250 이상이면 안될 것 같은 심리적 저항선이 있어서 작은 신발에 발가락을 한껏 구겨 넣어 신고 다녔다.

8. 넓은 발볼 역시 좁은 신발 안에 찌그러져 있었던 터라 긴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발목을 잘라서 버리고 싶을 정도로 발이 아팠다.

9. 그때의 한이라도 풀려는 듯이 지금은 발가락이 춤을 출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이즈의 신발을 산다.

10. 얘들이 얼마나 팔자가 좋은지 부채꼴 모양으로 한껏 펴진 것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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