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김장 일기
1. 김장을 했다.
2.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김장에 보조 역할을 했다.
3. 어렸을 때는 전날 저녁 배추를 산더미같이 욕조에 넣어두고 소금으로 절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다행히 이제는 절인 배추를 주문해서 받는다.
4. 엄마가 김장 양념을 만드시는 동안 나는 양손이 양념으로 가득 묻은 엄마의 주문에 맞춰 액젓을 더 넣었다가 매실청을 더 넣었다가, 아니 너무 짠가, 고춧가루를 더 넣었다가, 너무 싱거워졌나, 액젓을 더 넣었다가를 반복한다.
5. 각종 썰기는 내 담당이라 새우젓을 숭덩숭덩 다지고, 무를 최대한 가늘게 채 썰고, 쪽파를 썰어서 김장 속을 준비한다.
6. 본격적으로 양념을 하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므로 미리 일어서서 허리도 좀 돌려주고 무릎도 좀 눌러주며 준비운동을 한다.
7. 절인 배추, 김장 속, 양념, 큰 대야, 김치통 등을 앉은자리에서 손에 닿는 위치에 착착 가져다 놓고, 앞치마와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채 작업을 시작한다.
8. 시작하자마자 일단 빳빳한 배춧잎을 하나 골라 양념을 쓱쓱 묻힌 후 입에 쏙 넣었는데,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9. 후아, 올해 고춧가루는 맵네, 그래도 김장하면서 먹는 겉절이는 포기할 수가 없어서 마구 먹다 보니 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다.
10. 우리가 언제까지 김장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끄응하고 접힌 허리를 조심조심 펴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