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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 대해 쌓여가는 의혹

간첩이냐, 사랑꾼이냐

by 디어리사

부대에서 A중대장을 아예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A중대장의 여자친구를 간첩이라고 알고 있는 간부들도 더러 있었고 A중대장의 여자친구는 진즉 헤어진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간부도 있었다.


나는 A중대장의 여자친구가 간첩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그 의견을 같이 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첫 번째는, A중대장이 주말만 되면 여자친구를 부대로 데리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부대에 민간인이 들어오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사전에 출입 신청을 한 사람들이 부대의 승인을 받고 들어오는 경우,


둘째는 부대개방행사를 통해 민간인에에게 부대를 개방하는 경우(그럼에도 부대 출입 간에는 보안조치를 철저히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종종 아내의 외출로 인해 독박육아를 맡게 된 아빠 군인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처리하러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함께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 이다.


A중대장의 여자친구는 이 세 가지 경우 중 어느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출입을 통제하는 위병소 근무자는 모두 기간병이고 간부가 썬팅이 진하게 되어 있는 개인 자차로 부대에 출입하다 보니 간혹 차 안을 꼼꼼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리고 간부가 굳이 차 안에 다른 누가 동승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부대에 민간인이 출입하는 경계근무의 허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종종 발생한다.


하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불규칙한 주기와 시간에 여러 번 찾아와 몇 시간을 중대장실에 앉아 있다가 유유히 나가는 것이었다.


혹 일하는 배우자가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이 상황에 본인을 이입해보았으면 좋겠다.


전혀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배우자의 회사에 몇 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고 싶은지?


아마 다들 왜 그렇게 하냐며 의아해할 것이다.


하도 부대를 찾아오다 보니 그 여자도 부대가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남자친구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중에는 어떤 신병의 신상 이력을 보고 그 인원을 중대 신병으로 선발하라고 한다든가 부대에서 당일 혹은 차주에 사용하는 교육용 탄(이하 교탄)의 종류와 세부 발수까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여자가 이전부터 유명한 밀리터리 덕후(군을 너무 좋아해서 어렵고 복잡한 장비의 제원 등에 큰 관심을 쏟고 일명 덕질을 하는 사람)였다면 그런 모습이 이해가 가지만 이 사람의 과거나 종사하는 직종은 그것과는 아주 멀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자주 가는 치킨 집에서 시키는 메뉴에 몇 그램의 소스가 들어가는지가 궁금한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부대에서 사용하는 교탄이 뭔지, 몇 발인지 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관심 갖기 쉬운 부분이 아닐뿐더러 군에서의 훈련이나 작전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민간의 평범한 여자가 관심을 가진다고 하기에는 의아한 부분이 있다.


필자가 이 여자가 간첩이라고 생각했던 두 번째 이유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처음에는 중대장실에 앉아 있는 그 여자를 만난 간부도, 기간병도 뜨끔하는 눈치였다.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중대장실에 2~3일 간격으로 찾아와 중대장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꾸만 찾아오니 나중엔 다들 그러려니 했다. 되레 ‘오늘도 오셨네요?’ 하고 인사를 하는 격이었다.


부대에서도 경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날 당직을 서던 B중대장도 한 소리했다.


“선배님, 여기 민간인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출입 신청도 안 되신 것이지 않습니까?”


“응, 근데 잠깐이고 어디 가는 게 아니라 중대장실에만 앉아 있다가 갈 거야.”


“그래도 안 됩니다. 얼른 정리하고 나가십시오.”


“B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좀 섭섭하네. 우리 밥도 같이 먹었는데 그건 그냥 기억이 되었을 뿐이야?”


B중대장은 뻔뻔스럽게 앉아있는 그 커플이 보기 싫어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중에 듣기로 B중대장은 귀가 무척 가려웠다고 한다.


그 여자가 괘씸하다고 B중대장 욕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반인 독자가 보기에 요즘 세상에 무슨 간첩이냐고 하겠지만, 휴전 상태의 한반도에서 북한을 바로 코앞에 두며 북한의 동태를 늘 주시하고 있는 조직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이 여자가 정말 간첩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는 자꾸만 대범해졌다. 그 중대의 기간병들의 전화번호를 물어 저장한 것도 몇 개 되었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마다 기간병들에게 문자를 했다.


‘나 이번 주에 부대 들어간 거 다른 간부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대대장이 혹시 너네 불러다가 내가 부대 들어왔는지 물어봤어?‘


‘너네 말고 나 마주친 다른 기간병들이 있나?‘


보통 자신이 부대를 왔다 갔다 한 것에 대한 부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부대에 올 때마다 본인이 구웠다면서 예쁘게 아이싱을 한 쿠키를 기간병들에게 나눠주면서 포섭한 것이었다.


A중대장은 여자친구가 손재주도 좋다면서 그 쿠키를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그걸 받아먹은 간부 한 명이 이렇게 똑같이 만드는 카페가 읍내에 있다면서 이건 만든 게 아니라 주문제작한 거라고 조곤조곤 말하기도 했다.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간부들도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여자가 간첩이라고 확신했다. 물증은 없었지만 확실한 심증이 있었다.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게 여자친구의 의도인 것인지 A중대장이 자랑하길 너무 좋아하는 성격 탓에 여자친구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A중대장은 여자친구 말고도 부대에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도 종종 데리고 왔는데, 그저 본인의 가족 구성원을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강아지와 고양이마저도 간첩인 게 아닌가 하며 헷갈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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