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겁니다
하루는 대대의 중대장 네 명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좀체 만나기 힘든 조합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렵게 성사된 만남은 아니었다.
이 만남의 배경을 좀 설명하자면 C중대장은 아내도 군인인 부부군인이다.
그 둘은 같은 학교를 졸업한, 그 대학의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났던지라 임관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다.
임관 3년 차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군인 커플의 비애였던가. 처음부터 멀리 떨어져서 시작한 부임지 덕에 신혼 초부터 함께 살지 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C중대장이 이 부대에서 중대장을 하게 되면서 기혼자 숙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혼인신고를 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이제야 신혼 같다며 좋다던 중대장은 이상하게 자꾸 아내가 훈련을 나가거나 당직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아주 공교롭게도 대대의 네 중대장들이 모이기로 한 바로 그날도 아내가 당직이었다.
무튼 C중대장의 아내가 집에 없어서 집이 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C중대장이 본인 집으로 중대장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그 정도 음식 솜씨는 없는 사람이었다) 본인을 감시할 아내가 없으니 ’ 한시적 총각‘이 된 기념으로 오랜만에 밥을 두둑이 먹고 PC방에서 밤을 새워 게임이나 하자는 속셈이었다.
PC방에서의 거사를 치르기 전에 네 명의 남자는 일단 다들 밥부터 먹자고 했다. 또다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삼겹살집과 네 명의 중대장.
막내 B중대장은 열심히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고 C중대장은 그저 밤을 새워 놀 생각뿐이었다.
A중대장은 뭐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근질거리는 입을 잘근잘근 씹으며 본인이 입을 열 수 있는 기가 막힌 타이밍을 살폈다.
A중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에 부푼 얼굴이었다. “중대장끼리만 있으니까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라며 꽤 뜸을 들이는 모습도 있었다.
“지금 여자친구랑 여자친구 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여태의 그 밝은 얼굴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그럼 부대에는 왜 출근을 안 한 거야? 그것도 3일 동안“
이야기가 길다고 했다.
A중대장은 제외한 나머지 세 중대장은 씹던 고기를 얼른 삼켰다.
A중대장 고향은 대구, 그것도 학군이 아주 좋은 동네다.
다시 말해, A중대장의 부모는 아들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은 헬리콥터 부모였고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를 더욱 애지중지했다.
그 말인즉슨,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꾸 본인을 자랑하려고 하던 그 모습도 극성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던 것이 그만 안 좋은 습관으로 굳어져버린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A중대장의 부모 입장에서는 그렇게 아끼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이 여자가 무척 궁금했다.
‘어떤 여자일까’ 보다는 ‘감히 어떤 여자가’의 마음이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A중대장은 늘 그랬듯 부모에게 하는 안부 전화에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이야기했고 부모는 자연스레 어떤 여자냐고 물었다.
“굉장한 여자예요. 어렸을 적부터 해외에서 자라서 할 줄 아는 언어도 6가지가 넘고요. 연봉도 10억이나 된대요. 그런데 좀 마음이 아파요. 부모님을 어렸을 적 여의고 외국에 사시는 부부에게 입양이 되어서 외국살이를 오래 했대요.”
A중대장의 부모는 벌써부터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집안 사정부터 읽어낼 수 없는 족보가 영 내키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돈을 그렇게 많이 번다니?”
“여기저기서 통역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은가 봐요. “
부모는 눈이 돌아 버렸다. 부모도 없는 집에 직업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여자를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런 여자가 다 있냐면서 아주 거머리 같은 여자가 본인들의 소중한 아들에게 들러붙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반대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
“하지만 엄마, 이 여자는 저를 아주 사랑해요. 제가 자주 서울에 가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이사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
A중대장 부모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둘이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엄마, 저도 성인이고 이제 결혼도 생각할 나이예요. 그런 건 알아서 할게요. “
그게 타들어 가는 부모의 마음에 그만 불을 지펴버렸다. A중대장의 부모는 그날 아들의 전화를 받자마자 장장 5시간을 달려 A중대장 여자친구의 집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