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중대장님, 웬일로 이렇게 일찍 퇴근하십니까. “
B중대장은 아침점호가 시작되기도 전에 출근해서 대대장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절대 퇴근하지 않는 이상한 신념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부대에 있으면서도 늘 대단한 체력과 건장한 체격을 유지했다. 유전자가 타고났든가, 어디서 몰래 운동을 하든가 둘 중 하나다.
“아, 오늘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갑니다. A중대장이 밥 사준답니다.”
“A중대장님이 말입니까? 그분이 밥도 사주신답니까? “
“저도 안 믿깁니다. 일단 먼저 가보겠습니다. ”
A중대장이 부대 간부와 밥 먹는 것을 잘 보지 못했던 다른 간부들은 B중대장과 함께 하는 식사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중대 간부들을 뒤로하고 B중대장은 본인의 차에 올라탔다.
장소는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고깃집. 약속 시간은 18시였다.
B중대장은 썩 달갑지도 않은 약속에 가기 위해 서둘러 퇴근했다.
B중대장이 고깃집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중대장과 여자친구가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B중대장은 A중대장의 여자친구를 실제로 본 몇 안 되는 사람이었을 텐데, A중대장의 여자친구는 흔히들 말하는 미인형은 아니었다. 되려 그 반대에 속했달까.
키는 작은 편이었다.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눈은 작고 찢어져 있었으며 살집이 있는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좁은 어깨에 얼굴도 큰 편이라(얼굴이 살 때문에 큰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비율이 좋지는 못했다. 큰 얼굴에 비해 작은 이목구비가 얼굴의 여백을 강조해 얼굴을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A중대장이 자랑하던 여자친구의 모습을 듣고 그저 상상만 했더라면 해외 바이어와 연락하며 바쁘게 지내고 운동을 좋아하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오늘 나타난 여자는 어딘가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자였다. 말로만 듣던 비범한 능력이 반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B중대장이 술을 안 먹어. 오늘 그냥 술 없이 고기만 먹자?”
하얀 비계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삼겹살이 테이블에 올라오기도 전에 여자는 통성명을 했다.
“응, B라고 했지? 나랑 동갑이라면서. 나는 A 여자친구야. “
그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B중대장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편하게 뱉었다.
부모님에게 예의 하나는 두들겨 맞아가며 배웠던 B중대장은 그럴수록 더 깍듯하게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B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
여자는 A중대장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면서 반갑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본인이랑 동갑이라는 이유로 만나자마자 말을 놓은 그녀의 예상치 못한 당돌함과 무례함은 B중대장에게 기분 나쁨 보다는 황당으로 다가왔다.
“나는 사실 오늘 내 여동생을 소개해주려고 밥 먹자고 한 거였거든. 안 그랬으면 밥 먹을 이유도 없었지! 네가 여자친구가 없다며. “
B중대장은 본인의 비밀 연애를 후회했다. 안 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으니.
“내가 소개해줄게. 한 번 안 만나볼래?”
B중대장은 괜찮다고 했다. 이 시골에서 왔다 갔다 하며 여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니야.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고 거절해 봐. “
여자는 끈질겼다. 본인의 휴대폰을 꺼내더니 한 여자가 있는 사진을 서너 장 보여주었다.
B중대장은 사진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매라고 하셨는데, 별로 안 닮으셨네요. 엄청 이국적인걸요?”
“응, 내가 여동생 하나에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부모님이 달라. 우리 다 입양됐거든. 내 여동생 근데 진짜 멋진 애야. 키도 177cm에 아직 학생이긴 한데 돈을 엄청 잘 벌어. 근데 얘도 만나는 남자가 없길래. 오늘 아예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네가 부담스럽다 그랬다며. 왜, 지금 오라고 할까? “
B중대장은 혼란스러웠다. 사진 속 인물이 앞의 ’ 언니‘라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겨서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황당한 답변과 아직 학생인데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돈이 많다고 강조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바쁘다는 동생이 무슨 수로 이 시골마을에 본인을 만나기 위해 고기를 먹으러 오겠다고 한 것이었는지 모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오라고 해서 당장 나올 수 있다면 그 여동생이란 사람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돼. 정신 차려.’
자칫 잘못하면 알 수 없는 이 여자의 집안과 얽힐 것 같았다. 당황한 B중대장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B중대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만 그 여자가 내민 동생이라는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실수를 했다.
여자는 이때다 싶었는지 냉큼,
“B야, 네 번호 좀 줄래? 원하면 내 동생 주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1차 위기는 모면했다.
고기가 어떻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몰랐다.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이따가 고기를 다 먹고 커피를 마시자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
B중대장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들을 조금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 여자는 B중대장이 본인의 여동생을 만나볼 것인가를 제일 궁금해한 것을 다음으로 부대의 일을 자꾸만 궁금해했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는 축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던데 이 여자는 달랐다. 자꾸만 부대에서 하는 일이 뭐냐, A중대장 잘하냐면서 부대의 일을 물어봤다.
말해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그건 왜 자꾸 물어보는지 조금 섬뜻했다. A중대장이 전화 통화하는 걸 몇 번 듣기는 했는지 그 여자는 이것저것 들은 내용을 물어보려고 던져보았지만 B중대장은 씩 웃으며 밥이나 먹자고 하고 넘겼다.
그러다 대뜸, 여자친구는 왜 없냐, 내 여동생 정말 안 만나 볼 거냐면서 또다시 여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집요한 여자였다. 마치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처럼 이야기의 다른 한 주제가 끝나면 여동생을 언급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여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옆의 두 남자는 조용해졌다. 여자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게.
“아, 그거요? 오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200개 정도 더 발주 넣어주시면 돼요. 대외 협력부서에 사전 협조한 거여서 다 알 거예요. 혹시 모르겠다고 하거든 제가 내일 다시 연락 한 번 드릴게요. “
여자의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B중대장은 이 여자가 간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을 곱씹었다. 그게 아니라면 A중대장을 만나러 본인의 서울 직장을 포기하고 이 시골까지 올 이유가 없었으며 구사할 줄 아는 언어가 6가지가 넘는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더군다나 오늘 이 자리에서 부대 일을 자꾸만 물어보고 자꾸만 자기를 이 여자의 여동생과 만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 께름찍한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자가 해외 협력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었던가? 혹시 이 여자가 이 시간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게끔 미리 다른 사람에게 일러두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그 직업이 있다고 믿게 했다면? 식사자리가 길어질수록 B중대장은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여자가 간첩이 아닐까 하고 확신을 가졌던 것은 이 여자가 한국말이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발음은 눈을 가리고 들어도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꼭 B중대장이 물어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재차 “그게 뭐야?” 하고 되묻는 식이었다. B중대장은 그 단어들을 몰라서 되묻는 그 여자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B중대장이 황당해서 어찌할 바 모를 때마다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 그 단어를 검색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떠들어댔다.
“야, 나 여자친구랑 이제 시간 보내야 하니까 커피는 생략.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여자친구 분도 안녕히 가세요. “
“응, 다음에 또 보자.”
‘다음은 절대 없지.‘라고 B중대장은 생각했다.
뒤돌아서 가려던 그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B야, 내 동생 진짜 안 만나볼 거야? 내가 지금 톡방 만들게. 번호 줄까? “
끝까지 긴장을 놓아선 안 됐다.
“괜찮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중에 들은 B중대장에게 들은 후기로 말할 것 같으면 식사 자리가 아주 기분이 나빴더랬다. 식사를 하면 할수록 이 여자는 과연 간첩이 아닐까란 생각이 더해갔고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더라도 이 여자에게서 여자를 소개받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