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여자친구랑 같이 먹어야 해
A중대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썩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본인만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알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런 모습은 종종 부대 간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를테면,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아는 척하고 싶어 하고 이전 부대에서 근무했을 때 본인은 못해내는 게 없었으며 성과상여금 A 등급을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그 부대의 1등 간부였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여러 모로 겸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험담처럼 들리겠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건 A중대장이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로 본인의 자랑과 더불어 여자친구를 자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가장 극심하게 떠안아야 했던 건 우리 부대의 막내 B중대장이었다.
B중대장은 큰 키는 아니었지만 운동을 좋아해 몸이 다부진 편이었다. 특히 코가 크고 예뻤으며 눈도 시원하게 찢어져 배우 장동건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은 아니었지만 훈훈한 외모를 지녔다.
점심 식사를 할 때면 입 주변에 음식을 묻히며 먹는 게 싫어 음식을 한 입 먹을 때마다 휴지로 입을 닦아내야 할 만큼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불의는 못 참으나 본인이 해야 하는 말은 예의 있게 관철할 줄 아는 열정 있는 사람이었다.
A중대장이 여자친구를 사귀기 몇 달 전부터 교제하는 B중대장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늘 여자친구가 없다 고 이야기를 했다.
어떤 여자와 함께 읍내 B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봤다거나 트랙에서 함께 운동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이 전해지긴 하나 선뜻 ’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생활도 깨끗한,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여자친구의 존재를 숨기는 걸 보면 분명 같은 직업 군인에, 같은 부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A중대장의 거만한 태도를 견딜 수 없었던 다른 중대장들은 사적인 식사 자리에 A중대장을 잘 부르지 않았다.
A중대장은 여자친구 때문에 그 자리에 잘 나오려고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다른 중대장들과 대화 코드를 잘 맞춰가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대화는 매번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다.
자연히 A중대장은 그런 사적인 자리와 더불어 그곳에서 오가는 사적 대화에 끼지 못했고(사실 퇴근하면 매일 볼 수 있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 끼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게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외부 소식에는 더욱 느렸다.
그 말은 곧, B중대장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너 여자 안 만나고 뭐 하냐.”
“운동합니다, 선배님. 퇴근하고 운동하고 밥 차려먹으면 벌써 잘 시간입니다. 여자를 어떻게 만납니까.”
A중대장에게는 B중대장이 여자가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운동만 하면서 늙어 갈 후배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잘난 본인은 연봉 10억의 여자친구를 얻어 행복하게 사는데 후배에게도 여자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밥 먹자, 오늘. 여자 소개해줄게. “
“됐습니다. 무슨 여자입니까. 이 시골에서 여자친구를 만드는 건 그 여자한테 민폐입니다, 민폐.”
“야, 그렇게 자꾸 아무도 안 만나면 혼자 늙는 거야. “
“아, 괜찮습니다.”
B중대장은 난감했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그 자리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럼 그냥 나와, 밥만 먹으러. 근데 내 여자친구도 같이 나온다?”
“예? 잘못 들었습니다?”
사실 A중대장은 후배가 걱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여자친구가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상명하복의 저주였을까. B중대장은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자리에 A중대장과 그 여자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