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이거 진짜야?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이는 27살. 우리나라 명문대학인 K대를 졸업해 현재는 S 백화점 본사와 T카페 프랜차이즈 지사에서 지역 매출 담당을 맡고 있어 무척이나 바쁘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해외에서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 때문에 시작한 유학살이로 인해 이 여자는 구사할 줄 아는 언어가 족히 6가지가 넘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 때문에 회사에서도 해외 바이어와 연락을 한다거나 해외 출장이 잦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연봉은 믿길지 모르겠지만 자그마치 10억에, 가지고 있는 재산은 더 많단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여태의 시간이 흐르기까지 A중대장의 입에서 ’ 여자친구가 해외 출장에 갔다 ‘는 말을 꺼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비행기를 그렇게 자주 타야 하는 여자가 공항도 없는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 이상해 여자친구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을 한 적 있다.
A중대장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여자친구가 대외 협력과 라 해외 시간에 업무를 맞추다 보니 출퇴근이 자유로워서 그렇다 “ 는 답변이었다.
믿겨나 지는가?
본인은 첫째고 형제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둘 다 돈을 엄청 많이 번다고 했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집안이 대단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외삼촌이 정말 공교롭게도, 우리 군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고위급 장교이고 가족 중에도 직업군인이 있다 보니 본인도 자연스레 군인을 만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군단에 있는 삼촌은 외국군과 연합 훈련을 할 때면 그 부대에서 통역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군단에서 통역을 해주고 삼촌에게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중대장은 군단에 있는 통역장교가 시원찮아서 군단이 이 여자에게 자주 통역을 부탁해 여자친구가 더 바빠졌다고 덧붙였다.
이상했다. 어쩜 이리 우연 같은 일이 많은지 군단에 근무하고 있는 통역장교는 나와 학교를 함께 졸업한 내 동기였고 심지어 나와 같은 영어과였다. 동기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곧잘 했기 졸업할 당시 영어과 우등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내 동기의 통역 실력이 시원찮을 리가 없었다.
석연찮은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S 백화점과 T 카페 프랜차이즈 지사에서 동시에 일하면서 간간이 들어오는 통역 업무까지 하려면 정말 몸이 하나라도 모자랄 것 같았다.
아무리 출퇴근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이라면 응당 계속해서 출근하던 사무실이 있을 텐데 고민도 없이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친구 근처에 살겠다고 서울에서 연고도 없는 오지로 이사를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저 두 일을 한 번에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의 실적이 고스란히 월급으로 떨어지는 지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10억짜리 연봉을 받는 몸값이라면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야근이 필수적이다.
어떤 회사든 시간을 선택해서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면 매일 최소 8시간 이상은 근무해야 하는데 저런 식이라면 한 직업을 반나절만 일하고 퇴근하는 꼴이었다.
머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인가?
나는 그렇지 않았다.
대대장은 우스갯소리로 “간첩이 아니냐 “고 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꼭 맞는 터무니없는 반응.
다들 웃었다.
대대장은 사랑을 빌미로 군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필요한 정보를 다 캐가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과 특히 군인을 소개받는다는 말에 얼마 만나보지도 않고 덜컥 이 사람을 만나겠다고 선택한 것에 모자라 집까지 옮겼다고 하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보요원이 그렇듯,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여자도 할 줄 아는 언어가 6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이 여자의 직업이 어떻다고 믿는 것보다 간첩이라고 믿는 게 더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대대장이 실제 그런 사례가 있어서 이야기하는 거야” 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대대장은 2008년의 원정화 간첩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북한에서 위장 탈북하여 군인 장교와 탈북 단체 간부 등을 통해 주요 군사 기밀을 유출해 북한으로 빼돌린 사건이었다. 그녀가 간첩 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그녀가 3년 간 교제하던 군 장교 덕분이었다.
어쩌면 가볍게,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을 수 있지만 식사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모두 동의하는 듯했고 다들 A중대장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A중대장 눈에만 사랑이었던 것 같다.
며칠 뒤, A중대장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모든 사랑꾼 남자친구가 그러하듯, A중대장도 프로필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그 사진이었다.
중대장의 프로필 배경 사진은 여자 혼자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찍은 독사진이었다.
비즈가 잔뜩 달린 머메이드형 드레스에 사진의 가로를 전부 채우는 드레스의 바닥, 그리고 손에 든 부케까지.
영락없는 신부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엔 다양한 콘셉트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 됐고 일반인도 연예인들이 찍는 잡이 사진처럼 화보 같은 사진을 언제든 쉽게 건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진에 대한 의심을 접었던 것은 A중대장이 이 여자친구를 무척이나 비범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이 여자가 악기라도 하나 다룰 줄 알아서 이 사진이 그저 정기 연주회 전에 찍은 기념사진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정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