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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소개팅

만난 지 하루 만에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by 디어리사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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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휴가 좀 사용하겠습니다.”


A중대장이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위수지역(한 군부대가 담당하는 작전 지역을 칭하며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평소에는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을 쉬이 벗어날 수 없는 군인은 위수지역을 이탈하려면 지휘관에게 보고한 이후 휴가를 사용한다.


“소개팅이 있습니다. 안전히 다녀오겠습니다.”




무교였던 그는 얼마 전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훈장교를 따라 주말마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지만, 정훈 장교는 나무속에 쇳물이 흐르는지 단단했고 중대장도 그걸 진즉 알았는지 3번 이상 찍어 볼 인내심을 갖지는 않았다.


중대장은 금세 다른 여자를 소개받는다고 했다.


장소는 서울, 부대와의 거리는 차로 약 2시간 30분 정도. 위수 지역을 넘어선 출타 지역이었다.


다들 중대장이 소개팅에 성공하면 매주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휴가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렇게 되기까지는 족히 한 달 뒤의 일이니 다들 그 걱정은 일단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주말은 늘 그렇듯 쏜살같이 지나갔고, 월요일 점심이 되었다.


다 같이 점심을 먹는 식사 자리에서 대대장은 중대장의 소개팅 성공 여부를 물었다.


“소개팅은 어떻게 된 것 같아? 애프터가 있을 것 같아?”


식사를 하던 간부들의 모든 눈이 일제히 중대장을 향했다.


역시 남의 연애사가 제일 궁금하다.


중대장은 씩 웃더니,


“토요일부터 1일입니다”라고 답했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도 점차 서구적 가치관으로 개방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이가 대부분인 군이란 집단에서 그런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은 점심 식사를 하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토요일에 소개팅을 하면서 말이 잘 통하길래 술 한 잔 하다 보니, 함께 밤을 꼴딱 새웠습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여자라 그 자리에서 바로 만나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조개구이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개 구이 이후의 안주는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는단다.


일요일에는 부대가 있는 곳 근처에서 술을 곁들인 깊은 대화를 했다고 덧붙였다.


한 번은 여자 집 근처, 한 번은 남자 집 근처. 공평하게 한 번씩 서로의 집 근처에서 밥을 먹은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덜컥 가족보다 가까운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했던 건 사람 보는 눈 하나를 정확하다는 중대장의 자신감이었을까, 술의 힘을 빌린 용감함이었을까, 외로운 마음이 불러온 성급한 무모함이었을까.


“그래,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축하하네. 잘 만나보거라”


군은 심심한 조직이다.


어제와, 심지어 작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틀에 박힌 업무를 하는 게 습관인 군은 그래서 늘 재미가 고프다. 무료한 군 생활에 남의 이야기 말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시간은 일주일이 흘러 다시 대대장과 참모, 중대장이 함께하는 점심식사 자리였다.


“A중대장, 여자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는가? 위수 지역 밖이라서 얼굴 보기가 어렵겠구나. “


“아닙니다. 여자친구가 이번 주에 부대가 있는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원룸 하나 빌려 여기서 살기로 했습니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여자는 거처를 옮겼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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