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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Aug 06. 2021

"비대면시대에 강연하기"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통해 진로특강을 듣고있다.


"비대면시대에 강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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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학교 몇 군데서 강의를 하게됐다.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에서 적게는 5명, 많게는 수백명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특강이다.


강연에서는 기자란 무엇인지(감히)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기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또 만약 학생들이 궁금해한다면 왜 (하필)기자가 됐는지도 설명해주었다.


나는 아직 강연 초짜라서 학생들의 태도에 따라 수업의 흐름이 왔다갔다하곤 했다. 학생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으면 신이나서 이말저말을 했다가도(심지어 개그도 쳤다), 학생들이 잘 듣지않고 딴청을 피우기 시작하면 또 주눅이 들어버려서 형식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들어도 재미없을 듯..


강의형태는 대면 또는 비대면이었는데, 그 학교 담당선생님이 신청하는 것에 따라 달랐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비대면을 원했는데,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줌zoom을 이용한 비대면 강의를 했다.


비대면 강의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아예 줌을 활용한 완전 비대면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에는 가되 방송실 같은 곳에서 혼자 방송하는 조건부비대면이었다.


두 종류를 다 해 봤는데, 비대면 수업방식은 꽤나 외로웠다.

줌을 활용한 수업이 힘들다는 교사들의 얘기나, 줌이 곧 유료화 될테니 교육당국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취재만 하다가, 내가 직접 그 시장에 뛰어들어가보니 그랬다.


우선 두어 시간을 혼자 죽어라 말해야해서 힘들었다. 대면수업이었다면 중간중간 장난도 좀 치고, 질문도 수시로 던지고, 학생들의 얘기도 좀 들어봤을텐데 말이다.


화면에서는 학생들이 보이긴하더라도 눈동자가 초롱초롱한지, 아니면 갈 곳 잃고 초점 잃은 눈동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대면일때보다 비대면 수업에서 왠지 모르게 학생들은 질문을 하지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룰을 만들어 내기라도 한 것인지 거의 말을 하지않았다.

내가 강연 중간중간에, 혹은 다 끝날 무렵 일부러 10분정도를 내어 질문을 받아야할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대면으로 만나게 된 학생들은 청각 장애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었다. 사실 그간의 수업에서 학생들의 오롯한 집중력을 이끌어내는 데에 자신감을 잃은 나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이들에게는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하고 충실하게 내용만을 전달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밝게 빛내며(화면을 뚫고 느껴질 정도로) 자세도 한 치의 흐트러짐없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오히려 수용자는 비장애 학생들처럼 아무런 제약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데, 정보 전달자인 내가 또박또박, 천천히 등의 방식을 먼저 떠올렸다는게 아쉬웠다. 스스로 그간 많은 제약이나 편견을 벗으려 노력해왔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간중간 수어를 하며, 또는 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을 통해 내게 질문을 해왔다. 감동이었다.


"왜 기자가 됐나요?"

"힘들 땐 어떻게 하세요?"

이에 난 충실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리 많지 않은 기회지만 학생들을 만나 강연하는 것은 잃어버렸던 내 초심을 다시 끄집어내준다.

그래 (비록 하루살이 인생으로 매우매우 힘들지만)나도 이런 때가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강연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괜히 뒤숭숭했다.


취재를 하다가 알게된 한 여고생이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나랑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하게 됐는데 괜히 그 친구가 보고싶어졌다.


이담에 날이 조금라도 선선해지면,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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