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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Oct 11. 2022

서른즈음에 울고싶어졌다

이 시대의 사랑 - 최승자





  내가 돈을 주고 직접 산 세 번째 시집이다.

첫번째 시집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고 두 번째는 문보영의 <책기둥>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이 책,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방법은 대개 이렇다.

제목이나 표지는 한 번 슥 보고 (정 내 취향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때론 이상한 제목에 가려져 내용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제목에 끌려 내용을 읽었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작품들을 여럿 봐 왔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살 때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이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여러 줄 보이면 구매로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상황과 맞는 혹은 내 감정을 들킨 것마냥 표현해 놓은 글귀를 보면 더할나위 없이 기쁜마음으로 바로 책을 산다.(책 <명랑한 은둔자>가 그랬다.)


  온라인에서 살 때는 요즘에 온라인 서점 MD가 '직접 고른 문장들'이라든가 하는 책 소개 글이 있는데 우선 이것들을 읽어본다. 워낙 글들을 (심지어 호소력있게)잘 써서 그것만 보면 다 사고 싶어지긴 한다.

그래서 '책 속의 문장'을 참고한다. 요새는 제법 많은 문장들을 맛보기로 써 놓는데 이 문장들을 읽어보고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러고나서 다음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책을 검색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몇개를 찾아본 다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라면 최종 구매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처음 접했는데, 그 중 나의 눈길을 유독 이끌었던 시가 있었다.




   삼십 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띄어쓰기 하나, 온점 하나 반점하나 그대로 옮겼다.)최승자의 시에는 늘 강렬한 한 방이 있다.

저 시에서는 첫 문장이 그랬다. 이미 나의 내면에서, 저렇게 까지 명징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생각해 본 적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처음 이 시인을 접한 사람이라도 저 시를 읽으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다.

강인하며 거칠고 투박하며 툭툭 내뱉은 듯한 단어들이 모여 하나의 시를 완성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모여든 거친 단어들은 한데 모아 놓으면 어쩐지 슬픈 느낌을 자아낸다. 난 그랬다.


  언젠가 어떤 소중한 독자 한 분이 내 기존 글 중 하나에 댓글을 달아주었는데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작가님의 글 속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반갑습니다.' 이 댓글을 읽고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특히 저 '담담하게 써내려갔다'는 부분에서 내 의도를 제대로 들킨 것 같아 더 좋았다. 


  내가 최승자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도 딱 그랬다. 무심히 던져놓은 말 속에서 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들. 그리고 다 읽고나면 스산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온기.

최승자 시인은 알고 있을까. 덤덤하게 툭툭 내 뱉은 저 단어들이 이뤄낸 하나의 시가 또 다른 독자 누군가의 손으로 가서 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겠지.


  얘기가 좀 돌고 돌았지만 저 시를 읽고 나는 단순하게도 나의 삼십 세, 그러니까 서른이 막 됐을 무렵을 떠올려봤다. 우선 서른이 되니까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스무 몇 살때와는 달라진 것을 느꼈었다.

달라진 체력 달라진 생각 달라진 취향 그리고 한없이 달라진 책임감‥


  예전에는 회사에서 새벽에 당직을 서도 하루가 거뜬했다. 하지만 요즘은 당직날 부담을 느낄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음을 느낀다. 당직날 당일과 다음날까지 여파가 이어진다. 심한 날에는 컨디션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정말로 체력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일과 당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뀐 것일까.


  생각과 취향은 고루해져만 가고 있다. 20대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때도 성향상 고루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적어도 그것에 자신감이 있었고 스스로 만들어낸 명분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른이 넘고 지금은 서서히 그 자신감과 명분이 흐릿해져 감을 느낀다. 아무리 군중심리에 익숙한 한국의 문화라고 해도 난 내 취향에 확고한 확신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짊어져야 하는 것들은 배가 되었다. 서른이 넘고 한 해 두 해 거듭될 수록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은 곱절이 됐다. 알아야 하는 것들도 많고 모르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부담이다. 울고싶었다.


  이렇게 짊어져야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행위를 두고, 어느 날에는 '느리게 사는 삶의 미학'이라고 스스로 칭찬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아집이 만들어 낸 비주류'라며 스스로를 한탄했다.



   슬픈 기쁜 생일


   2

   너무도 자유로와 쓸쓸한 세상

   너무도 자유로와 무서운 세상

   너무도 자유로와 버림받는 세상

   아무도 나의 사랑을 받지 않아요

   때로 한두 푼의 동전

   시들은 장미꽃을 던져주지만

   아무도 나의 손을 잡아 일으키지 않아요



  시인 역시 갈팡질팡한 삶의 굴곡들을 시구들로 단죄했다.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이 시집의 해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의 시는 대단히 강렬한 일상적 언어들이 서로 부딪치고 화해하는 언어의 드라마로 보인다"며 "여기에서 드라마란 시인이 의식의 싸움에서 앓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의 과정"이라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들의 글은 대개 우울하거나 외롭다. 고독과는 좀 다른 의미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고 (글 앞머리에서 언급했던)윤동주가 그랬으며 (역시 글 앞머리에서 언급했던)문보영이 그랬다.

우울한 문학작품들을 접하면 내게도 전이되는 기분이지만 동시에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하면서. 저렇게 훌륭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했네 하고 말이다.



  서른이 넘고나니 새 친구를 만나는 것도, 또 만나 온 친구를 유지하는 것도 뭐 하나 쉽지 않다.

그들에게 또는 그에게, 그녀에게 솔직한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다가 어쩌다 털어놓은 이야기가 와전이 돼 쉽게 금이 가버린 관계도 생겼다. 그리고 그 금은 쉽게 메꿔지지 않더라.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그냥 기본으로 비워둔 지 오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심리와 정서를 그 때 그 때 담아내기에 지친 것도 있고(이십대 때는 꽤 자주 바꿨었다) 너무 관종같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마저도 이젠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취향이 있고 생각이 다른 법이니까. 만약 카톡 프로필을 바꾸면서 위안을 얻는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마치 내가 때 되면 문구류나 책을 구입하면서 마음의 안도를 얻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점점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해져 가는 것만 같다.

겉으로 드러내기가 부담스럽고 그러다보니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 스스로 고립돼 버리는 것도 같다.



   청계천 엘레지


   회색 하늘의 단단한 베니어판 속에는

   지나간 날의 자유의 숨결이 무늬 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청계천엔

   내 허망의 밑바닥이 지하 도로처럼 펼쳐져 있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사무실과

   헌책방들과 뒷골목의 밥집과 술집,

   낡은 기억들이 고장 난 엔진처럼 털털거리는 이 거리

   내 온 하루를 꿰고 있는 의식의 카타곰.


   꿈의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돼지처럼 살찐 권태 속에 뒹굴며

   언제나 내가 돌고 있는 이 원심점,

   때때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튕겨져 들어와 돌고 있는 원심점,

   '그것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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