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누워있는다거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말만 기다리던 일상보다 평소에 도래해있는 평일의 소중함을 더 크게 여기게 돼 나름 야무지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어느 휴무일에는 아침일찍 일어나 대충 아점을 챙겨먹고 노트북과 읽을 책, 다이어리, 필통, 이어폰, 지갑 등을 가지고 나갔다. 에코백 속에 이미 읽을 책(<명랑한 은둔자>)이 한 권 들어있었지만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특유의 책 냄새와, 평일 오전이었지만 드문드문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이들이 보였다. 사실 가방 속에 있는 그 책(<명랑한 은둔자>)은 우선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읽었던 책이다. 빌려서 읽다가 너무좋아서 밑줄을 일일이 긋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아 마지막 남은 나의 서점쿠폰을 여기에 적용하기로 하고 지난 저녁에 기어코 책을 샀던 것이다. 그 책을 포함한 나머지 책들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들을 또 한아름 빌린다음 카페로 갔다. 받아뒀던 기프티콘을 활용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 케익은 포장을 했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해 글을 쓴다. 평소 머릿 속에 구상했던 것들과 휴대폰 메모장에 신변잡기적으로 적어뒀던 메모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글이 된다. 누군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다. 랜선으로 만나게 된 최초이자 얼마없는 소중한 독자에게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흡족한 마음을 안고 노트북을 덮어 평일 오후 한적한 카페의 분위기를 눈에 담는다. 옷에는 커피향이 은은히 밴다.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을 사러 제과점에. 피자빵을 트레이에 담았을 때 모처럼이니까 갓 구운 크루아상도 사고‥ 그러고 있는데, 갓 구운 식빵도 먹고 싶어져서, 5분 기다리면 영국 식빵을 살 수 있다고 해서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며 방금 산 갓 구운 크루아상을 한 입. 5분 후, 갓 구운 영국 시빵을 사서 집에 돌아와 빵을 먹은 후에 옷을 차려입고 외출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 감상. 미술관 카페 메뉴에서 슈크림 사진을 발견.
2.
'왓츠인마이백'이라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다. 아니 사실 이미 한 물 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여전히 최신의 흥미로운 콘텐츠 중 하나다. 가방 속에 뭐가 있는지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설명을 간략하게 하는 그런 영상이다. 들고 다니는 물건은 어느정도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를.
(특히 책이 그렇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아니 책을 좋아하기는 하는지. 나에게있어 이 부분은 중요하다.)
내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나. 읽을 책 한 권, 독서 다이어리, 막 노트(업무일정 등을 기록하는), 볼펜, 화장품 파우치, 두통약, 타이레놀, 이어폰, 카드지갑, 차 키, 명함지갑, 핸드크림.
이 물건들이 있으면 마스다미리의 <오늘의 인생> 속 주인공 수짱처럼 '어디든 내 책상에 앉아있는 것처럼 안심하게 된다'. 오늘의 인생.
3.
가끔 남이 무슨 책을 읽는 지 궁금할 때가 있다. 대체로 남의 인생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성향에도 I와 E가 나뉜다고 생각한다. 파워 I들은 책 커버를 둘러서 본인이 뭘 읽고있는지 감추고 싶어 하는 듯 한다.(나도 I이다) E들은 대개 읽는 책도 힘이 넘치고(?) 화려하고 거국적인 느낌이 나는 것들을 골라 읽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편견일까. 여튼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면 난 그 책의 줄거리가 몹시 궁금하다. 회사에서도 당직날 같은 때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거나 책상 위에 올려진 선후배의 책을 보면 몰래 검색해본다. 어떤 내용의 책이고 누가 쓴건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책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상상한다.
전철을 탔는데 옆에 선 여성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쩜, 첫 페이지 였습니다. 제목은 보이지 않았지만, 맨 처음은 이런 문장이었습니다. '시체는 화려한 캐미솔을.'
4.
삶의 질이 자동차를 끌기 전후로 달라졌음을 느낀다. 좋은 차를 끌지는 못하지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타이어와 엔진오일, 배터리 등을 수시로 관리해줘야 하지만 그래도 좋다. 차는 안온한 나의 은신처다. 어느 가을날 한적한 공간에 차를 세워두고 창문을 살짝 내려둔 채 혼자 차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차안에서 몰래 울기도 했지만.) 마스다미리가 말하는, 그러니까 수짱이 말하는,
"어디 잠깐 앉아서 쉬고 싶을 때. 배는 출출한데 그렇다고 일부러 가게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 그런 때. 벤치나 화단이나 계단이나, 그런 곳에 앉아 만주 같은 것을 먹으며 잠깐 숨을 돌리고 싶은 정도인 그럴 때."
나는 차 안에서 머물고있다.
5.
오후까지 푹 잔 토요일. 커피가 떨어져서 주머니에 지갑만 넣고 장을 보러. 슈퍼에서 커피를 사고 빵집에도 들르고. 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날은 맑고, 비닐봉지 너머로 맛있는 빵이 보이고. 아아, 인생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6.
언제부턴가 불면을 앓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버린 불치병이다. 11시반에 잠들든 12시 넘어 잠들든 꼭 새벽에 한 번씩 깬다. 가끔은 악몽과 함께 깨기도한다. 처음에 든 생각은 괴롭다는 것인데 열흘 넘게 한 달가까이 지속되니까 그냥 짊어지고 가야하는 필요악같은 존재가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 그래서 잠들기 전에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요."라던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후배의 말이 생각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좋았던 일 떠올리기라든가 맛있는 음식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면서 잠들고 있다.
불면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해봤다. 그 중 하나는 낮에 몸을 피곤하게 굴리고 특히 침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저 숙면을 취하는 곳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뇌에 주입시켜주라고 했다. 하지만 침대에서 책 읽거나 휴대폰 보는 게 제일 편안한 걸. 궁극적으로 갖춰야 하는 건 역시나 스트레스 줄이기였다.
영화나 음악이나 공연이나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난간'을 만드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7.
홍대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정확히는 교육을 받으러 간 것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교육장소 근처의 카페를 갔다가 또 근처에 화장품을 파는 로드샵에 가서 급히 바를 수 있는 립틴트 하나를 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수장에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 앞에 멈췄는데 옆에 선 남자 대학생의 가방에 인형이 달려있었다. 그걸보며 묘하게 귀여우면서 안도감(?)이 들었달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귀여운 경험이라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던 기억이 있다.
붐비는 전철 안에서 앞에 선 사람의 가방 주머니에 바다표범 인형이 있어서 한 숨 돌린 오늘의 인생.
8.
먹는 것에 크게 흥미를 느끼진 않는다. 예능 '나혼자산다'에 나오는 코드쿤스트처럼 아주 적게 먹고사는 이른바 '소식좌'는 아니지만 나 역시 정량(?)이상을 먹으면 새벽에 자다가 배 아파서 깨고 화장실에 자주 갔던 기억이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로 남아서 워낙 적게 먹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도 먹는 것으로부터 기다려지는 희망은 있다. 금요일 혹은 토요일 밤에 시켜먹는 치킨 같은 것. 뿌링클 먹는 맛에 산다. 회사에 출근해서 비교적 여유로운 날 타먹는 (아이스)믹스커피 덕에 산다. 오늘의 인생.
9.
하시구치 료스케 감독의 <세 가지 사랑 이야기>를 보고 돌아오는 길.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전철 안에서도, 도착해 역을 나올 때도 이불에 누워서도 여전히 영화 속에 있었습니다.
10.
어떤 날의 휴대폰 메모.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벗어나고 싶어서 적어둔 걸까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걸까. 둘 다겠지.
개인의 행복, 다른 사람은 모른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 지는 그 사람만 안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의 행복을 가볍게 보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오늘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