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랑에 속절없이 무릎 꿇는다…
*이번 글의 커버 사진은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의 스틸컷입니다.
1. 모니카 마론, 김미선 옮김, 《슬픈 짐승》(문학동네, 2010)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 표지부터 무거운 감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가득 찬 책이에요. 약간 ‘아.. 진짜 찐이다 찐이야’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얘기랄까요.
— 인물들의 관계나 시공간적 배경 모두 확실히 어둡고 무겁긴 해요. 일단 이 책의 처음과 끝을 모두 책임지는 여자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사랑하는 사이고(본인도 남편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져 있던 때의 이야기부터 나오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자는 여자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 남자가 떠난 뒤 그를 기다리느라 자신이 몇 살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여자의 사랑은 정말로 진하고 깊습니다. 이런 사랑이 글로 표현이 되는 거였나? 싶지만 모니카 마론은 그걸 해내고요.
— 백문이불여일견..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을 묘사한 부분을 좀 보실까요. “나는 그를 기다렸다. 몇 주일 동안은 감히 집을 비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필 내가 집을 비운 시간에 그가 돌아왔다가 내가 없는 것을 알고는 영원히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밤에는 전화를 베개 옆에 갖다놓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오직 그만을 생각했다. 몸짓 하나하나, 예전에 내게 했던 모든 말들, 우리가 나누었던 밤의 포옹들을 계속 되새겼다. 내 연인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정말로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다.”
— 여자가 그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은 또 어떻고요(저 진짜 웁니다..). “언어를 필요로 하는 어떤 것도 프란츠에 대한 내 사랑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었다.”
— 사랑에 흠뻑 젖어 아주 미친듯이 휘둘리고 싶은 어느 날, 꼭 읽어보실 수 있길! (신형철 선생님의 고품격 리뷰도 읽어보세요.)
2.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난다, 2019)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그치?”
“이거 말고 너.”
— 여기서 벌써 이 책을 두 번이나 소개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사랑’을 말하는데 이 책을 어떻게 빼놓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아주 큰 사랑이 두 개나 나와주는데요…
— 지구인 한아와 외계인 경민과의 사랑이 진짜 엄청나게 달아서 막 ‘어우 어떡하냐 어우ㅎㅎㅎㅎㅎ’ 하면서 읽게 될 수밖에 없다면, 여기에는 또 다른 사랑, 그러니까 사랑 중에 진짜 큰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덕질’도 나옵니다. ‘아폴로’라는 가수에게 흠뻑 빠진 ‘주영’이라는 친구가 그 주인공이고요.
— 주영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아폴로에게 할애해요. 시간, 마음, 돈 모두 쓰죠. 주위 사람들의 걱정 같은 비난에는(“아니,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 오히려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휩쓸려 살아야 한다면 아폴로의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들어 살고 싶었다”고 생각해버리고 말 정도로 열정적인 팬입니다.
— 조금이라도 덕질을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그가 있어서 정말 행복하잖아요..? 주영처럼 그를 세상의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스프링처럼 상승하고 말잖아요.. 제가 그래서 그런지 정말 주영에게 너무 큰 이입을 하며 읽었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아폴로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주영이 아폴로를 찾으러 동서남북 뛰다니죠. 아주 극적입니다. 내 별이 사라진다니.. 정말 상상만으로도 너무 슬퍼요.
— 한아와 경민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폴로를 향한 주영의 사랑까지 아주 세밀하게 포착한 이 책은 정말 사랑 그 자체…
3. 안드레 애치먼, 정지현 옮김, 《수수께끼 변주곡》(잔, 2019)
“내 삶이 배라면, 당신은 배에 올라 야간 항행등을 켜 놓고 영영 사라져 버린 사람이죠. 모두 내 생각뿐일지도, 내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빛으로만 살아왔고 사랑을 했어요. 버스에서,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수업 시간에, 복잡한 콘서트장에서, 1년에 한두 번 당신과 비슷한 남자나 여자를 보면 내 심장은 여전히 요동치죠. 아버지가 그러는데 사람은 살면서 딱 한 번 사랑을 한대요. 때로는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찾아올 수 있으며 나머지는 전부 의도적인 거래요.”
— 네, 뭐.. 이미 말이 필요 없는 안드레 애치먼의 장편소설입니다. 영화화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인데.. 아마 그걸 읽은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안드레 애치먼은 사랑을 묘사하는 데 특별하고 유별난 일가견이 있다는 걸요. 정말.. 심장 부여잡고 쓰러지고 싶어진다니깐요.
—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소설집 같지만 장편소설이고, 주인공은 모두 ‘폴’입니다. 폴이 10대 때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겪는 사랑과 감정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가 사랑을 느꼈던 사람들과의 얘기랄까요. 이렇게만 얘기하면 별거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폴이 겪는 일들과 감정은 정말 펄떡펄떡 살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랑을 하고 싶다! 막 이런 감정이 샘솟게 합니다… 정말 사미안..(사랑에 미친 안드레라는 뜻..)
— 위에서 인용한 문장들로 이미 심장 한가운데가 푹 찔린 기분이었지만.. 저는 특히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편지 형식으로 표현된 <만프레드>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기에 관찰하고 관찰하기 때문에 잘 알게 되고 잘 알게 되니까 가까이 가고 싶고 그렇지만 그럴 수 없어서 꿈도 꾸고… 이런 것들이 아주 솔직하게 표현돼요. 제가 짝사랑 전문이라 더 난리가 났던 것 같지만 사랑이 뭐 언제 공평하게 양방향이던가요?
— 그 짝사랑의 마음을 대단하게 잘 표현해놓은 문장들로 마무리합니다.. 아, 정말 세계가 붕괴될 때까지 안드레 애치먼이 계속 사랑과 뒹구는 이야기를 써줬으면 좋겠어요!
— “난 당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피합니다.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지니까요.”
— “당신을 잃을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당신은 내 평생의 후회 가운데 하나가 되겠죠. 놓친 기회, 갖지 못한 자식, 할 수 있었거나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 스쳐 간 연인들처럼. 몇 년 후 이 허름한 테니스 하우스와 물웅덩이가 떠오르고 당신의 노란색 플립플롭이 철벅거리는 소리가 생각나겠지요.”
더위가 아닌 사랑으로 불타오르시길!
그럼 2000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