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주인공인 책들
이 책들이 맞을 것 같은 분
1) 타인의 세계에 대한 공감능력과 이해도가 높은 분
2)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뤄진 책에 끌리는 분
1. 와카타케 치사코, 정수윤 옮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토마토출판사, 2018)
간략한 내용 설명
— 74세인 모모코 씨가 주인공인 책입니다.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과 떨어져 살며 혼자 지내는 노인 여성의 독백으로만 이뤄진 독특한 책이에요.
— 혼자 사는 나이 든 여성의 삶과 그 삶을 채우는 하루하루들, 주인공인 모모코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쭉 나옵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 일단 번역이 굉장히 좋아요. 이 책 주인공 모모코는 일본 지방 사람이라 원서가 사투리로 쓰였는데, 번역을 하신 정수윤 선생님은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 사투리를 강원도 사투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왜 방송을 보든 영화를 보든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들을 많이 마주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어떤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한국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단 생각마저 들어요.
— 정말로 노인의 시선에서 노년이 설명되는 것 같아 좋았어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이미지를 투영한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건 아마 와카타케 치사코라는 작가가 55세에 처음으로 소설 작법을 배워서인 것 같아요. 심지어 문예상을 수상한 최연장자라고 하시더라고요(책을 읽고 나서 안 사실이었는데, 이걸 알고 나니까 책이 더 좋아졌어요!). 이른 나이에 뭔가를 이룬 것도 대단하지만 모두가 ‘이제 와서?’ ‘너무 늦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나이에 뭔가를 이룬 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후자야말로 진짜 용기 아닐까요?
— 늙는다는 걸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모모카의 하루를 보면서, 그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걸 들으며 제가 생각했던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지웠어요. 저는 늘 나이 드는 건 슬프고, 노년은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런 세상의 시선을 밟고 일어나려는 모모카를 보며 ‘나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라는 용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사족
—이 책이 영화화가 되어 2021년 7월 한국에도 개봉했었어요. 당연히 흥행엔 실패했지만 아오이 유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분량이 168쪽으로 아주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안에 든 건 너무 너무 크고 깊었어요!
2. 욘 포세, 박경희 옮김,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 2019)
간략한 내용 설명
— 재작년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욘 포세의 소설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노인이 주인공인 책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끝이 안 보이는(실제로 이 책에는 마침표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어요) 바다처럼 펼쳐놓은 책입니다.
—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쓰는 아이의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는데, 삶과 죽음, 실존과 부재 등을 정말로 문학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
— 모든 활자에 생사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었어요. 책마다 활자의 분위기가 다르고 또 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이 책은 정말 글자 하나하나에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그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과 안도 같은 양가적인 감정을 정말 다 묻혀놓았던 것 같아요. 모호한 설명이고 사바사겠지만..!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역시 번역이 정말 잘된 거라 생각합니다.)
—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잘 보여줘요. 꽤 오래전에 읽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주인공이 죽을 때쯤 이미 죽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들은 ‘그냥 이렇게 되는 거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담담했달까요. 매달리며 울고 불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꼭 죽을 때뿐만 아니라 책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고요.
— 벅차서 눈물이 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저도 좀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긴 한데, 정말 어느 부분들에서는 막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슬퍼서는 분명히 아니었어요. 마침표가 전혀 찍히지 않은 문장들이 고마워서일지, 잠시 쉬었다가 거리를 두었다가 가는 삶이 유려하게 그려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가 벅차오르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이런 걸 느낀다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사족
— 신기하게 이 책도 152쪽인 아주 적은 분량의 책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이 주는 울림은 그 어떤 책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을 거예요.
— 전자책이 나와 있긴 한데, 괜찮으시다면 종이책으로 읽는 걸 추천드려요. 마침표가 한 번도 찍히지 않는 문장들이 기계가 아닌 종이 위에 있어서 더 좋은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좋은 책은 왜 이리 많을까요?
정말 다 읽고 죽고 싶습니다….
어쨌든 20000 끝! 손 번쩍 들어 인사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