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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Aug 15. 2021

젊은이들은 상상하지 않는 노년의 삶

노인이 주인공인 책들



이 책들이 맞을 것 같은 분

1) 타인의 세계에 대한 공감능력과 이해도가 높은 분

2)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뤄진 책에 끌리는 분



1. 와카타케 치사코, 정수윤 옮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토마토출판사, 2018)


간략한 내용 설명

— 74세인 모모코 씨가 주인공인 책입니다.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과 떨어져 살며 혼자 지내는 노인 여성의 독백으로만 이뤄진 독특한 책이에요.

— 혼자 사는 나이 든 여성의 삶과 그 삶을 채우는 하루하루들, 주인공인 모모코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쭉 나옵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 일단 번역이 굉장히 좋아요. 이 책 주인공 모모코는 일본 지방 사람이라 원서가 사투리로 쓰였는데, 번역을 하신 정수윤 선생님은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 사투리를 강원도 사투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왜 방송을 보든 영화를 보든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들을 많이 마주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어떤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한국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단 생각마저 들어요.

정말로 노인의 시선에서 노년이 설명되는  같아 좋았어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이미지를 투영한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건 아마 와카타케 치사코라는 작가가 55세에 처음으로 소설 작법을 배워서인  같아요. 심지어 문예상을 수상한 최연장자라고 하시더라고요(책을 읽고 나서  사실이었는데, 이걸 알고 나니까 책이  좋아졌어요!). 이른 나이에 뭔가를 이룬 것도 대단하지만 모두가 ‘이제 와서?’ ‘너무 늦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나이에 뭔가를 이룬 것도 정말 대단한  같아요. 후자야말로 진짜 용기 아닐까요?

— 늙는다는 걸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모모카의 하루를 보면서, 그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걸 들으며 제가 생각했던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지웠어요. 저는 늘 나이 드는 건 슬프고, 노년은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런 세상의 시선을 밟고 일어나려는 모모카를 보며 ‘나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라는 용기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사족

—이 책이 영화화가 되어 2021년 7월 한국에도 개봉했었어요. 당연히 흥행엔 실패했지만 아오이 유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분량이 168쪽으로 아주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안에 든 건 너무 너무 크고 깊었어요!



2. 욘 포세, 박경희 옮김,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 2019)


간략한 내용 설명

— 재작년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욘 포세의 소설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노인이 주인공인 책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끝이 안 보이는(실제로 이 책에는 마침표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어요) 바다처럼 펼쳐놓은 책입니다.

—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쓰는 아이의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는데, 삶과 죽음, 실존과 부재 등을 정말로 문학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

— 모든 활자에 생사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었어요. 책마다 활자의 분위기가 다르고 또 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이 책은 정말 글자 하나하나에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그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과 안도 같은 양가적인 감정을 정말 다 묻혀놓았던 것 같아요. 모호한 설명이고 사바사겠지만..!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역시 번역이 정말 잘된 거라 생각합니다.)

—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잘 보여줘요. 꽤 오래전에 읽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주인공이 죽을 때쯤 이미 죽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들은 ‘그냥 이렇게 되는 거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담담했달까요. 매달리며 울고 불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걸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꼭 죽을 때뿐만 아니라 책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고요.

— 벅차서 눈물이 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저도 좀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긴 한데, 정말 어느 부분들에서는 막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슬퍼서는 분명히 아니었어요. 마침표가 전혀 찍히지 않은 문장들이 고마워서일지, 잠시 쉬었다가 거리를 두었다가 가는 삶이 유려하게 그려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가 벅차오르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이런 걸 느낀다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사족

— 신기하게 이 책도 152쪽인 아주 적은 분량의 책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이 주는 울림은 그 어떤 책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을 거예요.

— 전자책이 나와 있긴 한데, 괜찮으시다면 종이책으로 읽는 걸 추천드려요. 마침표가 한 번도 찍히지 않는 문장들이 기계가 아닌 종이 위에 있어서 더 좋은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좋은 책은 왜 이리 많을까요?

정말 다 읽고 죽고 싶습니다….

어쨌든 20000 끝! 손 번쩍 들어 인사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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