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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Aug 18. 2021

솔직히 아름다운 문장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름다운 것의 쓸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들


이 책들이 맞을 것 같은 분

1) 책 한 권 읽었을 때 좋은 문장 몇 개는 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

2) 너무 좋은 문장 때문에 심장 맞아본 경험이 있는 분



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옮김, 《달걀과 닭》(봄날의책, 2019)

“사람은 알아야 한다. 사람은 알아야 한다. 삶이 짧다는 것을. 삶이 짧다는 것을.”

2019년에 제 맘대로 꼽았던 올해의 커버였습니다.. 진짜 아름답지 않습니까..

간략한 책 설명

— 이 책으로 처음 접해봤던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집입니다. 초단편부터 중단편까지 아주 다양한 분량의 단편이 담겨 있던 소설집으로 기억해요.

— 문학 좀 읽어봤다는 분들은 이미 어? 하셨겠지만 배수아 작가가 직접 번역한 작품이에요. 배수아 작가님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항상 낯설고 난해하고 두려운데 계속 읽어내려가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세계와 인물들을 제 눈앞으로 끌고 와서는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달걀과 닭》을 읽으며 ‘어쩜 이렇게 본인과 꼭 맞는 작가의 책을 번역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

— 이 책이 출간됐을 때 가장 반겼던 건 작가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작가들의 작가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웠던가

— 탁월한 삶에 대한 묘사.. 아, 정말 정말로 저는 이 책을 잘 때마다 품고 잤어요. 모든 인간의 삶의 어떤 부분들을 정말 예리하고 아름답게 도려내서 딱 보여주는 느낌이었거든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요. 이런 글을 어떻게 쓰지? 이런 걸 어떻게 포착해내지? 이래서 소설가인가? 와 진짜 미쳤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 했습니다.

죽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 일으켜요. 특히 밤에 읽어서  기분이  증폭됐던  같긴 한데요. .. 정말 소주  병을 가볍게 부르는 글이었어요.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의 모서리에는, 우리가 있다.”

여러분.. 정말 이런 문장을 보고 어떻게 소주 생각을  하겠어요.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도 중심에 있지 못하고 모서리에 있는데,  모서리에 심지어 ‘  ‘우리 있는데요.. .. 진짜 미쳤습니다


사족

— 사실 문학을 별로 안 읽었던 분들에게는 좀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일 수 있어요. 평소 책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분이 읽기에는 ‘??아, 이래서 내가 책이랑 안 맞아…’ 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책이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름다운 책이긴 합니다. 저의 한참 부족한 설명 능력으로는 이 책의 아름다움을 반지반도 담아낼 수 없었으니 그냥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꼽기 어려웠지만) 좋았던 문장 하나

하루 온종일, 사랑은 현재와 미래를 보완해줄 과거를 애걸했다.



2. 안드레 애치먼, 오현아 옮김, 《알리바이》(마음산책, 2019)

“먼저 개요를 적고 종이에 글을 써내려가는 게 아니다. 개요를 적을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간략한 책 설명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을 쓴 안드레 애치먼의 산문집입니다. 원작을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뭐.. 이분도 무슨 말을 덧붙이기 힘들 정도로 글을 잘 씁니다.. (제가 이곳에서 추천했던 《수수께끼 변주곡》​도 난리가 나버리는 책이니까요..)

— 부제가 ‘상실의 글쓰기에 대하여’인데요, 사실 ‘글쓰기’ 얘기보다는 안드레 애치먼 본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과 자신에게 의미를 가지는 공간 등에 대해 쓴 얘기가 더 많습니다.

— 실제로 저자 소개만 봐도 안드레 애치먼은 어지러운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이집트에서 터키계 유대인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집트 정세가 불안해 로마로 망명했고 나중에는 뉴욕으로 이주해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불어도 할 줄 알고, 영어도 할 줄 알아요(3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 한 국가가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그 모든 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요(정확하게는 원어민들이 들으면 ‘아, 얘 원어민 아니구나’라고 캐치할 수 있다고 표현했던 것 같아요). 본인만 느끼는 걸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본인이 느끼는 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무엇이 아름다웠던가

— 안드레 애치먼은 상황의 묘사와 상황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해 덧붙이는 글에 정말 탁월한 것 같아요. 첫 꼭지인 <라벤더>는 자신이 좋아하는 라벤더 향과 향수에 대해 쓴 글인데 정말 첫눈에 반하고 말았답니다.

“라벤더 향을 맡으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 모두 푹신한 베개가 놓인 따뜻하고 아늑한 방 안, 탁탁 불꽃이 튀는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후드득 듣는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삶이 안전함을 상기할 수 있었다. 라벤더 향을 맡으면 우린 떨어질 수 없었다.”

보세요.. 이미 라벤더 향이 가득한 어떤 방 안에 앉아 있는 얼굴 모를 ‘우리’가 절로 떠오르죠? 그런데 그 상황에 실제로는 알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상상해서 덧붙여버리잖아요. 라벤더 향을 맡으면 떨어질 수 없고 “삶이 안전함을 상기할 수 있”는 “우리”라뇨.. 너무 멋진 우리 아닌가요..

—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이 정말 공감되더라고요. 살다 보면 어쩐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학교든 친구든 회사든 뭔가 나는 이곳이 아니라 저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여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같은 느낌이요. 안드레 애치먼은 어느 곳에서든 그런 점들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자기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생각과 마음 들이 정말 잘 표현되었더라고요. 있는 곳에 온전히 발을 딛고 살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 그가 있었던 혹은 자주 떠올리는 여러 도시들의 풍경 묘사도 아름다웠습니다. 이 책을 주로 침대에서 읽었는데 침대 한가운데서 이집트도 갔다가, 파리도 갔다가, 맨해튼도 갔다가, 뉴욕도 갔다가 했다니까요? 가본 적도 없는 유럽 풍경에 아주 흠뻑 젖었습니다.


사족

— 하지만 역시 이 책도 조금 장벽이 있습니다. 갈수록 글이 좀 어려워지기도 하고(아무래도 다루는 주제가 주제다 보니!) 철학적인 부분도 꽤 많아요. 저도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냥 넘긴 부분이 있었고요. 평소에 책과 좀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이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역시 꼽기 어려웠지만) 좋았던 문장 하나

나는 그늘에서 바라보는 태양이 좋았다. 이렇게 나는 사람들을 좇음으로써가 아니라 마치 언제라도 우정을 잃고 그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그들을 좋아했다. 출구를 탐색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레이먼드 카버가 체호프의 단편을 읽으면 “심장의 위치가 조금 달라진 느낌”을 받는다고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덧붙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고요.

 책들을 읽으면 여러분 심장의 위치도 조금 달라지며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이만 총총!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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