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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Mar 08. 2023

딸기 케이크

지는 서운함

나이가 들수록 서운한 것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이 말도 퍽 서운하다. 쌓아온 세월만큼 너그러움과 여유라는 내공을 갖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을 탓하는가 내심 찔리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서운함은 대게 기대에서 온다. 얄팍한 배려심을 가진 탓에 챙기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만 매번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그럴 수도 있지란 주문마저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작은 기대라 하기엔 어지간한 고집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가 보다.


메신저로 안부를 물으려다 문득, 이 친구는 한 번도 먼저 내 안부를 물어준 적 없구나 하고 서운해지는 일이 있다. 쪼잔함을 무릅쓰고 이전 대화를 쭉 스크롤해 본다. 생일 축하도, 새해 인사도, 늘 먼저 마중 나가는 나의 메시지가 붕붕 허공을 가르는 강아지 꼬리 같아 서글퍼진다.


먼저 말 걸어 주면 좋을 텐데. 첫눈 오는 것을 보았느냐고. 벌써 봄나물이 나왔던데 맛보았냐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바람에, 살포시 궁금함을 얹어 불어와 주면 좋을 텐데.

이야기를 전해준다면 더 기쁠 텐데. 오후에 마신 차가 맛이 좋았다고. 요전에 산 가방이 넉넉해 마음에 꼭 든다고. 별것 없는 작은 이야기들을 단단히 쌓는다면 놓쳐버리고 싶지 않은 우리가 아슬아슬해지는 일은 없을 텐데.


끝도 없는 서운함이 어둡고 공허한 구석을 만든다. 늦기 전에 밝은 빛을 데리러 가야겠다.


도착한 곳은 베이커리. 겨울에는 딸기케이크만 판매하는 시즌제 케이크 전문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딸기 케이크가 있다. 겹겹이 쌓인 얇은 시트에 딸기를 얹은 케이크. 생딸기 대신 딸기잼을 넣은 케이크. 딸기를 층층이 쌓아 올린 케이크.

이곳의 케이크는 촉촉한 시크를 깔고 그 사이에 부드러운 생크림과 자르지 않은 딸기를 통째로 가득 채운다. 그 위로 다시 시트 얹고 생크림 잘 두르고 다시 딸기를 얹은 형태이다. 시트가 많지 않아 무겁지 않고 딸기가 가득해 새콤하다. 묵직한 생크림도 달콤하게 감긴다.


딸기 케이크는 반짝반짝 밝다. 항상 환한 쇼케이스에서 만나게 되어서 일지도, 하얀 생크림을 두르고 있어어 일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주문해 건네어 받는 순간부터 밝은 마음이 달콤하다. 새콤하게 한 입. 달콤하게 두 입. 부드럽게 세 입. 어두운 서운함이 밝게 채워지기 위해 한 조각은 족히 필요하다.


대화창을 닫으려다 마음도 닫히는 것 같아 망설이던 안부를 슬그머니 던져 놓는다. 서운함은 지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딸기 케이크가 밝게 채워주었으니 이 정도 패배는 괜찮은가 싶기도 하다. 멋대로 기대하지 않기도, 너그러움과 여유를 갖기도 어려우니 오늘도 지고 만다. 대신 그 대가로 딸기 케이크와 소중한 이의 소식을 얻는다. 친구의 답신에 어느새 손가락이 달려간다. 붕붕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아마 다음번에도 서운함은 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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