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의 경계를 넘어
직업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능력자나 가능한 일이야. 회사 가기 싫은 마음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것도, 자리가 나지 않아 뻐근한 허리로 버티고 서있는 것도 힘에 부치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이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늘 가던 길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더해보는 날. 다양한 직업을 떠올려보지만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지는 일이 마땅히 없는 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면 좋을 텐데 아쉬움마음에 다양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시샘하는 날.
직업을 바꾸어 본 일은 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거나 잘하는 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해서, 능력 닿는 한 힘을 내다보니 시간에 익어 버린 업이다. 경력이 쌓인 만큼 나이도 함께 먹어서, 가끔은 이 일의 남은 수명을 가늠해 본다. 더 이상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소진의 시간을 세어보는 것이다.
회사 밖은 춥다고들 한다. 매달 나오는 월급은 말할 것도 없고 작게만 느껴지던 복지들도 사라질 것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찌감치 퇴직을 선언하고 긴 쉼표를 찍고 있는 지인은,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버겁다고 했다. 자꾸만 길어지는 설명에 서글퍼진다는 것이다. 회사가 나는 아니겠만, 어찌 된 일인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구'라는 말로 사회 속의 나를 소개하는 일이 간단히 해결되고 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고마운 곳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기가 쉽지 않다. 출근의 고단함이나 업무의 스트레스,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할 수명까지 더해서 자꾸만 퇴사를 상상하게 된다.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면, 기왕이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한다. 주어졌으니 하는 일이 아니라, 두근거림이 함께 하는 일, 퇴근이 아쉽고, 내일이 기대되는 일. 그건 아마 일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너무 좋아 출근이라는 경계를 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다.
출근이 괴로워졌을 때, 퇴근으로도 도망치 지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아 탈출을 생각하고 있구나 한숨이 나왔다. 즐기지 못하니 성장하지도 못하겠구나, 그만둘 때가 다가오고 있구나 하고. 희미한 내 자리의 수명과 뚜렷한 출근의 경계. 누군가 등 떠밀지 않아도 두리번거리며 걸어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야 한다.
배움 쇼핑. 모르는 길로 들어서는 지도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대가를 지불하고 배워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배우다 보면 잘하는 것이든, 잘 될 것 같은 것이든 한 개 정도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지 않고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움 쇼핑의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단연 요리이다. 제과로 시작해 한식과 양식을 거쳐 떡 제조까지. 우선 해보고 소질이 있는지 또는 엉망일지라도 즐거운지 판단해 보기로 했다.
때로는 조리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때로는 베테랑의 기술을 선보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규격을 맞춰 자르는 일은 고단했고, 적당히는 영원한 미지의 단어였으며,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은 내 손 안에는 깃들어 본 적 없는 재능 같았다. 평가의 시간 정갈한 결과물 앞에서 기가 죽기도 했다. 몇 시간을 내리 서서 조리하고 설거지를 하다보면 몸뚱이가 아우성을 쳤다.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역시 쉬운 일 하나 없어 절레절레 계단을 내려오면, 훅하고 들어오는 바깥공기가 갇혀있던 음식 냄새를 일깨운다.
버터와 계란이 익어가는 냄새. 가열된 기름의 냄새. 쌀가루가 익는 냄새. 몇 시간을 고생하며 채운 냄새이다. 수고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쉬운 일은 없지만 시작 없이 이루어지는 일도 없어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어려움,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는 어려움. 그 어려움을 채웠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 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분명 남는 것이 있을 거야 하고.
토닥거리다 보면 섞여있던 후회와 고민이 함께 빠져나간다. 비워나가고 말았으니 먹어야 한다. 매콤함 쫄면. 신선한 야채가 잔뜩 얹어 나와 자칫 건강식인가 오해하게 만드는 쫄면. 아직 남아 있는 다소 느글거리는 냄새를 단번에 씻어내려 줄 쫄면.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 줄 쫄면.
쫄면도 나이를 먹어 조금은 바뀌었다. 씹고 끊는 맛이 있는 굵은 면을 선호하는데 요즘은 대부분 면이 가늘다. 메뉴판에 ‘굵은 쫄면’ 메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이제 쇠락의 길을 걷는 모양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본체는 사라지지는 않았다. 가는 면발이 되었어도 여전히 메뉴의 메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새콤 매콤한 양념에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과 콩나물 오이를 짊어지고 등장한다.
반죽 치대기와 포 뜨기에 지친 날. 익지 않아 폴폴 가루가 날린 떡에 좌절한 날. 똑하고 부러진 당근에 덜덜 손을 떨던 날. 가득 채운 음식 냄새에 고단한 느글거림은 느낀 날. 어김없이 쫄면 한 젓가락 후루룩 물고, 쫄깃한 면을 꼼꼼히 씹어낸다. 혹자는 우연한 배합에 의해 쫄면이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그럴 리 없다. 이런 쫄깃쫄깃함은 분명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콩나물이나 오이, 양배추, 당근 어떠한 야채와 비벼져도 어우러지는 이 맛은 우연히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냄새에 고민에 걱정에 부대끼던 속이 매콤함으로 위로받는다. 기운 없이 쳐져있던 얼굴도 아삭한 신선함에 약간의 생기를 얻어본다.
배움 쇼핑은 해결이 아닌 위로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시도한 것 만으로 도움이 된다. 다시 한번 출근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수명이란 것도 조금은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즐겁지 않아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가득 채웠던 고단함을 매콤하게 씻어내주는 쫄면이 함께해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