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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Oct 07. 2023

컵라면

마음 치료제

허해지는 건 비단 몸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끝없는 업무와 야근을 반복하다 보면 피곤한 몸보다 공허한 마음이 무겁다. 왜 그리 일이 많은지 묻는다면 역량에 비해 많이 짊어지고 있는 업무량을 이유로 대겠지만, 그 대답 속 부족한 자신이 문제인 것 같아 우울함도 한 덩이 더해진다. 일은 일대로 했는데 보람대신 우울함이라니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허한 몸을 달래는 데에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말에 긴 잠을 몰아 자는 것이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울리던 휴대폰 알람도 주말만큼은 긴 잠을 너그러이 허해준다. 일고여덟 시간을 자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매일 줄여자느라 부족했던 잠을 손꼽아 더해보면 그 곱절도 모자라다.


영양제를 털어 넣는 것도 방법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캡슐에 마법을 기대하고, 쓴맛을 가진 약이니 몸에 좋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쉬이 가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위로가 스며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마음을 달래는 것에는 이렇다 할 정해진 방법이 없다.  마음은 잠에 들지도, 약이 들지도 않는다. 이유나 시기에 따라 허한 형태가 다르기 때문인가 싶다. 업무로 다치고 지친 허함일 때 나만의 치료제는 도서관이다. 활자를 채워 달램의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다.


책은 사서 읽자 주의이다. 무릇 종이로 된 책 곁에 두고 수시로 살펴야 진정 읽었다고 할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덕분에 온 벽면이 책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몇 장 읽다 말아 그저 고여있는 책도 많다. 그런 책을 볼 때면 읽는 것보다 사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도서관을 찾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책을 사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있고부터이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 아닌 짐을 늘리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럼에도 야금야금 몰래 소장의 기회를 만들고 있지만, 당장에 들이마실 활자가 필요할 때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도서관에는 멈춰있는 공기가 가득하다. 같은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책들이 만들어낸 공기이다. 나란히 선 좁은 책장을 비집고 들어가 촘촘한 제목 중 하나를 골라낸다. 잘 맞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몇 장을 빠르게 읽다 내려놓기를 반복한 끝에서야 겨우 소중한 한 권을 품에 안는다.


주말에는 도서관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벽을 따라 4인용 책상이 줄을 지어 놓여있는데, 약속이나 것처럼 같은 방향의 바깥 의자부터 채워 앉는다. 그 자리가 모두 차면 이번엔 그 반대편의 안쪽 의자가 채워질 차례다. 일행이 아니고서야 옆자리에 나란히 앉기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아직 빈자리가 몇 남아있어 안쪽 의자에 자리 잡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해를 피해 조심히 읽다 중반부에 이르러 그만 슬픈 이야기를 골라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눈물이 과한 사람이다. 흔한 소재나 장치에 그럴 줄 알았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걸려들어 울어버린다. 때문에 슬프다고 알려진 영화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영화관 관람은 부러 피한다.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운다는 것이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일이다. 고요한 도서관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묻어버리기 어려운 양의 눈물 콧물이 넘쳐흐를 참이다.


울음이란 간사해서, 일단 터지고 나면 다른 것들이 섞여 들어온다. 종이 속 인물의 아픔에서 시작된 슬픔이 점점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어 서러움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주 6일제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니, 이렇게 서러운 일이 있을까!

언제까지 많은 업무량을 버텨야 하는 것인가!

하찮은, 그러나 벗어날 길 없는 직장인의 눈물이다.


대각선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연신 눈물을 닦는다. 책을 높이 든 채로 이야기를 때문에 한번, 나 때문에 한번 더 운다. 허함이 활자로 채워지고, 둥둥 떠있던 더께가 떠밀려 나간다. 그러나 울음은 끊지 않으면 그나마 채운 것도 모두 쓸려나간다. 소리를 죽이고 조심히 일어나 책을 제자리로 돌려 놓은 뒤 자료실을 나서 계단을 돌아 지하로 내려간다.


도서관 지하에는 매점이 있다. 밖에서는 편의점이나 슈퍼라 불리지만 도서관 안에 있으니 매점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구조만 바꾸어온 매점은 점점 단촐해져 이제는 간단한 빵이나 과자 등만 팔고 있다. 수험과 취업을 거치는 동안 도서관은 어쩔수 없이 가는 곳이었다. 이곳에 자신을 몰아넣고 칸막이에 둘러싸여 집중에 염원을 더하며 버텼다. 그때에는 매점에도 백반이나 라면 등 몇 가지 조리 메뉴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골라 드는 것은 컵라면이었다. 간단하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때에는 참으로 맛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예전처럼 맛있게 먹지 못한다. 밀가루는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인스턴트는 몸에 좋지 않다는 소리를 하는 나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도서관에서는 마치 정해진 경로처럼, 오래된 기억을 따라 지하의 컵라면으로 향한다.


울음은 멈췄지만 웅덩이가 고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틀어막지 않으면 울컥 터져나와 처량함까지 더 해질 것이다. 이야기와 인물을, 일과 나를 번갈아 떠올리다 컵라면을 앞에 두고 앉은 것이 우스워졌다. 뚜껑을 열고 한 젓가락 들어 올린다. 구불한 면도 뱅글한 건더기도, 여전한 맛임에 웃음이 나온다.


정해진 것 없는 깜깜한 미래를 목전에 두고 고생을 쌓던 때에도 후루룩 먹고 맛있다 했던 것처럼. 미처 다 울지 못한 얼굴을 하고도 그 맛을 찾아 앉은 것처럼.


힘들어도 슬퍼도 한 끼를 챙겨 먹으려는 나는, 허함을 채우려 치료제를 찾아 도서관을 찾는 나는, 쉬이 지치는 마음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첫 입은  맛있었지만 마지막 입은 더부룩했다 어리석은 욕심쟁이같은 마음을 두드리며 도서관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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