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숲 Oct 08. 2023

차(茶)

대화 한 모금

'물에서 자라는 건 갈대, 들에서 자라는 건 억새

억새를 볼 때면 엄마가 알려주는 콩알 지식이다. 갈대를 볼 때에도 똑같이 읊어준다.

'얼굴형이 이응 모양인 것이 올빼미, 비읍 모양인 것은 부엉이'처럼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 문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주 다시 묻는다. 뭐가 갈대였더라? 물가 있는 건 뭐더라? 하고. 엄마의 말은 들어도 또 듣고 싶어서 자꾸만 묻게 된다.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은 아니다. 곧잘 유튜브에서 본 고양이의 이야기나, 지인과의 통화를 전해 준다. 안타까운 장면에는 힘껏 마음을 담아서, 화가 나는 일에는 울분 담아서 감정도 함께 전해준다. 깊은 공감을 할줄 아는 좋은 화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나쁜 청자이다. 건성으로 듣기도 하고, 더러 핀잔을 주기도 한다. 쓸데없이 잘 믿는다고 가르치려 들 때도 있다. 한쪽말만 듣고는 모를 일이라고 현자를 흉내 내는 일도 다반사다. 그럴 때면 엄마는 너랑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다고 토라진다. 일부러 삐딱선을 탄다고 구박하는 것은 덤이다. 나는 누구를 닮았는지 스스로도 성격이 고약하다.


엄마와의 대화를 좋아하지만 엄마의  모든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는 이기적인 편식은 갈등을 불러온다. 그러니 평화로운 대화를 위한 여유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꾸만 삐딱선을 타다가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영원히 하차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들을 준비를 하는 데에는 차가 제격이다. 기왕이면 소담한 찻잔에 잎차를 준비를 한다. 나는 차를 우리는 것에 서툴다. 적당한 온도의 물과 적절히 우러날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한다. 넘쳐버린 시간에 떫어지기도 하고 쓸데없이 큰손이 되어 담은 찻잎에 과한 맛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 준비할 때부터 여유와 조심성을 부러 모아야 한다.


둥근 다관에 물과 찻잎을 담는다. 모난 곳 없는 시간을 바라며 기다린다. 적당한 타이밍이란 것이 어려워 조금씩 차를 따라 마셔본다. 다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기다림의 미학을 저버리는 일이겠지만 좋은 맛을 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 담긴 잰걸음이다. 조바심이 섞였지만 마실만한 차를 얻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다 우러나면 조금만 따라도 금방 채워지는 작은 잔에 따른다. 여유 있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찻잔이 고새를 못 참고 한마디 하는 나를 닮았다. 오늘은 나를 도와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찻잔이기도 하다.


엄마와의 티타임은 가능한 청자로 있으려 한다. 그 일은 어떻게 되었어하고, 어제 다녀온 것 곳은 어땠어하고. 물어보고 들으려 한다. 시작은 대게 곱지 않다. 뭐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냐는 투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아직인가 보다. 말이 우러날 때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진득한 기다림을 체득하지 못했으니 한 모금 두 모금을 더한다.


엄마의 말이 향과 함께 떠오르고, 나의 말이 찻잎과 같이 가라앉는다. 대화의 균형이 잡혀갈 때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엄마는 나에게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참고 산다고 한다. 가슴을 치며, 니 눈치를 보느라 그렇지라고 한다. 참은 게 그거라고? 놀란 눈을 과장해 만들고 웃음으로 넘기려 해 보았으나 차로도 가라앉히는데 실패한 말이 튀어나간다. 나도 그렇거든? 불효자는 오늘도 매를 번다.


엄마, 그러니까 물가에서 자라는 게 뭐더라? 나는 엄마가 말해주는 게 좋더라. 그 말들은 마치 엄마 같아서 좋더라.

그러니 차를 우려 이야기를 졸라야겠다. 엄마의 이야기가 듣고 싶으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이전 01화 호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