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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Oct 21. 2023

호떡

달콤한 풍경

커다란 천막 뒤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리모델링이 한창인지 건물 밖으로 시멘트나 자재들이 빼꼼히 나와있다. 뭐가 있던 자리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자주 찾던 가게는 아닐지라도 매일을 지나다녔는데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 이렇게 무심하다.


오래된 주택가인데도 변화가 잦다. 하루아침에 업종을 바꾼 가게가 들어서기도 하고 영영 불이 켜지지 않는 빈집이 돼버리기도 한다.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이겠지만 어떤 동네가 되어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택이 줄지어 있던 동네의 변화는 빌라로 시작되었다. 4, 5층 높이라 아파트에 비하면야 꼬마 건물이겠지만 기껏해야 2층 양옥들 사이에서는 영영 섰이지 못할 거인처럼 보였다. 그러던 것이 하나둘 세를 늘려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빌라의 수가 남아있는 주택의 수를 앞지른 것이다. 20층에 달하는 아파트까지 무리 지어 들어오면서 주택은 납작해져 갔다.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꼬장함으로 주택을 사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당 위에 하늘을 이고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안타까움과 불안을 키우는 것이다.


그 불안함 때문인지 높은 층 수의 공동 주택들이 여러 채 들어선 지 십수 년이 넘어가도 어찌 된 일인지 눈에 익지를 않는다. 비슷비슷한 외관에 찍어낸 듯한 입구까지 별 재미가 없다. 반면에 주택들은 눈을 감고도 이 집 저 집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랜 세월을 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각기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오래된 동네인 만큼 남아있는 주택들도 연식이 꽤 되어 신도시의 주택단지같이 세련된 맛은 없다. 도깨비가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은 집도 있다. 그럼에도 대문 위로 커다란 호박을 이고 있거나 담장 너머로 감 나무 가지를 뻗고 있는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예 담장을 헐어 마당을 드러낸 집도, 단층으로 지은 옥상 위에 테이블을 놓은 집도 있다. 지붕의 모양도 다 달라서 비스듬하게 높이 만들어진 지붕을 보면 저 안에 다락방이 있겠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어둑어둑 서늘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공동 주택에 대해서는 도무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주택은 이 집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쉬이 상상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각자 다른 얼굴을 가진 주택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동네에서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몇 가지 더 있다. 동네 끝에 다다르면 입구가 이어지는 재래시장도 그중 하나이다. 지척에 마트도 있지만 '시장에 간다'라는 것은 마트의 쇼핑과는 다르다. 계산까지 셀프로 이어지는 마트에서는 좀처럼 사람에게 물건을 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인은 마트란 자고로 물건을 맡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그동안 맡겨둔 값을 치르고 가져오는 곳이라 했다. 우스갯소리였겠지만 커다란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을 돈과 교환해 오는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시장은 사람에게서 물건을 산다. 돌아올 대답이 뻔한데도 맛이 들었는지 물어보고, 어떻게 보관하는 것이 좋은지 조언을 듣기도 한다. 물론 친절하지 않은 상인도 있고, 같은 값이면 마트 쪽이 좀 더 좋은 제품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곳은 모든 가게에 각자의 얼굴이 있다는 점에서 아파트보다는 주택을 닮았다.


시장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작은 리어카에서 호떡을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엄마의 기억을 더듬어 들어보면, 적어도 30년은 그 자리에 계셨다. 새벽부터 준비하셨을 것이 분명한 반죽이 큰 통 안에 들어있다. 말랑한 반죽을 떼어 설탕으로 만든 소를 넣어 굽는다. 이 호떡에 씨앗이나 치즈처럼 유행하는 것은 자리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곳에는 그것에 맞는 맛이 있는 법이다.


잘 구워진 호떡을 종이봉투에 담아 건네시는 주름진 손이 자그마하다. 따뜻하고 쫄깃한 호떡을 한입 베어문다. 가장자리를 지나면 잘 녹은 설탕이 진득한 달콤함으로 맞아 준다. 더러 쓴맛이 나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파는 것에 비하면 기교도 없지만, 늘 같은 맛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기에, 호떡이 먹고 싶을 때에는 고민 없이 찾아가면 된다. 여름에는 불판 앞이 덥지는 않으실까, 겨울에는 호떡 반죽에 손이 시리진 않으실까 쓸데없는 걱정가지 더해가며 천 원짜리 한 장에 따듯한 호떡 두장을 받아 온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풍경이 된다. 호떡 리어카가 사라진 자리는 분명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잘 닫히지 않는 대문도, 담벼락에 기대어 놓은 의자도, 붉은 벽돌 사이 활짝 핀 국화도. 사라진다면 그리움을 담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좀더 한결같이 머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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