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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ul 26. 2020

눈물로도 씩씩한 하루

(with. 강진아 장편소설_오늘의 엄마)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엄마의 꿈을 듣고서야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이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아는 언제나 엄마에게 요구하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이토록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정아를 찌른다.(p.253)


강진아 장편소설_<오늘의 엄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를 간병하는 자매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요즘 내게 이런 책들은 알아도 피할 수 없는 총알처럼 언제나 가슴에 와 박힌다. 실체 없는 아버지의 죽음을 뒤로하고,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한 애인의 죽음은 가슴에 안고, 엄마의 죽음과 맞서 있는 주인공에게 온 죽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감정의 무게가 된다.


암, 치료의 과정, 죽음의 서사에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함께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사별의 슬픔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책을 읽는 누구도 울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절제된 묘사를 보여준다. 그저 두 자매와 엄마의 이별의 시간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흘러간다. "엄마 돌아가시면, 니 안 보고 살 거다." "어, 나도." 자매는 화해하지 않는다. 그래도 또 엄마 기일에 등을 대고 누워 잠이 든다. 곳곳에 이런 게 사는 거라 말하는 것 같은 현실감에 나는 오히려 울어버렸다. 울다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더 펑펑 울어 버렸다. 그 하늘에 엄마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죽을 것이다. 그처럼, 엄마처럼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지금은 살아 있다. 아직은 살아 있다. (p.169)


엄마 없이 사는 날들의 대부분을 그토록 일방적이기만 했던 엄마의 사랑을, 그 희생을 자주 잊고 이기적이게 너무도 잘 산다. 살아 있다. 그런 내가 싫을 만큼. 괜찮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괜찮아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떠난 지 백일도 넘었으니까.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처럼 엄마가 바라는 건 내가 남은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걸 테니까.


그런 날들 사이에서, 오늘처럼 어떤 문장을 만날 때, 눈부시게 예쁜 하늘을 바라볼 때, 엄마가 마지막까지 신었던 덧신이 눈에 걸릴 때, 울기 좋은 핑계를 찾은 사람이 된다. 하지만 긴 하루의 한 부분이 슬픔이었다고 그 하루가 꼭 슬픔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많은 나날 중 하루 내가 종일 울었다고 내 삶이 씩씩하지 않은 게 아니다. 오늘 그런 하루가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야 한다는 강박 없이 눈물로도 씩씩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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