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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ug 02. 2019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with. 김소연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 계급이다.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부(富)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


정희진_<혼자서 본 영화>, / 김소연_<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재인용







 오랫동안 해 왔던 생각.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가족이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나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았고, 바라보지 않았으며, 끝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구도가 잘 잡힌 사진 같은 사람이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려 애쓰는. 하지만 사진 바깥의 너저분한 것들은 늘 가족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일은 늘 죄의식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마음 안에서 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타인과는 조금만 맘이 맞지 않아도 미련 없이 돌아서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 버리는데, 가족은 그럴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시인 김소연은 말한다. 서로를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는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가족에게는 있다고.


몇 번의 사랑을 도망쳐 나오면서 나는 표면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헤어짐의 이유는 늘 내게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헤어짐은 일정 부분 늘 편안함을 동반했다. 그렇다. 가족이니까,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을 넘어 심지어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사랑을 시도하지 않는 겁쟁이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상쇄할 만큼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엄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하는 생각.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김소연의 이야기를 다시 빌리자면, '부모들의 말은 형식적으로는 이해와 존중을 표상하기 때문에 자상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강박적인 강요에 가깝다'는 것.


그러므로 무한한 엄마의 사랑도 의심해볼 필요는 있다, 다만 그러고 싶지 않을 뿐. 그런데 부모만 그렇지 않다. 가족이란 이름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가장 좋은 울타리다. '너를 위해서'인 말들이 정말 '너'를 위하는 말인지, 너를 위한다는 핑계로 '나'를 위하는 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이고, 부모, 형제도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폭력으로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직면했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문제에서는 멀어질 필요가 있다. 시간적이든 물리적이든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 문제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이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내가 없으면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내가 빠진 어떤 공간도 또 그 상황에 맞춰 잘 굴러간다. 나만 생각해도 괜찮다.


어떻게 마음을 노력으로 만들겠는가. 더구나 사랑 아닌가? 세상에 노력으로 안 되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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