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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Dec 18. 2021

첫눈이 내린다

with. 한정원_<시와 산책>


눈은 흰색이라기보다 흰빛이다. 그 빛에는 내가 사랑하는 얼굴이 실려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멀어도, 다른 세상에 있어도, 그날만은 찾아와 창밖에서 나를 부르겠다는 약속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약속이 두고두고 눈을 기다리게 한다.


한정원_<시와 산책> (p.14)




눈이 오면,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문장을 읽고 한참을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봅니다.

눈 온다는, 친구의 카톡에 답장을 하고, 또다시 눈송이가 손에 떨어지도록 괜히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눈이 온다며, 전화해 준 사람의 다정한 마음이 좋아서 옷을 대강 챙겨 입고 자박자박 눈길을 걸어 카페에 왔습니다. 누군가와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서 정신과 의사 주영도(김동욱)는 연인과 나란히 걸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잃게 되면, 뭐든 믿을 수 있게 돼요. 영혼, 천국, 환생 같은 거 다.

이제 아픈 몸에서 벗어났으니까 가고 싶은데 훨훨 날아다니겠지.

하늘나라에선 먹고 싶었던 거 다 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내겠지.

내가 너무 보고 싶어 하면, 바람이 되어 한번쯤 나를 스쳐가 주겠지."


저도 바람이 불면, 비가 몸을 적시면, 펑펑 흰 눈이 내리면 '우리 엄마,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나'생각하며,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비에, 내리는 눈에게 엄마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정말 엄마가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해 주는 것만 같아서.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 함께 사는 거라는 문학적 표현이 진실이라면,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모든 순간은 엄마가 내 기억으로 찾아드는 존재의 시간이 되는 것일까요?


사실 장례를 포함하여 죽은 자를 기억하는 모든 행위는 산 자의 이기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죽은 자를 잊지 않겠다는 말로, 나의 슬픔을 이겨 보려는 발버둥 같은 것. 바람과 비와 눈에게 아프고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실어 보내고 편안해지고 싶은 몸부림 같은 그런 것. 그런 것들이 철저하게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 그런데 저는 이런 마음이 좋습니다. 조금 이기적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기억하려는 그 마음으로 어쩌면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잖아요.

"엄마, 잘 지내지? 이제 아프지 않지?"

그렇게 올해, 첫눈의 흰빛에 엄마의 안부를 묻습니다.


한정원 시인의 위의 문장 뒤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집니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p.14)

"엄마,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 아프지도 않고." 

울어도 괜찮지만, 올해부터는 울음 꾹 참고 담담하게 눈이 녹는 걸 볼 겁니다. 

그동안 울음으로 제대로 보내지 못했던 나의 안부를 꼭 제대로 흘려보낼 겁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 펑펑 내릴 눈을 설레는 약속처럼 기다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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