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우사랑 Apr 18. 2019

엄마, 전화 하나 사줄까?

(with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박애희)

엄마, 내 핸드폰에도 여전히 엄마 번호가 저장돼 있어.

전화번호를 검색하다가 가끔 '엄마'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찌릿해.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엄마 번호로 전화를 했다가 끊은 적이 있어.

엄마 핸드폰은 이미 해지했고,

전화하면 낯선 이가 받을 걸 알면서 왜 그랬을까.

나는 벨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지.

잠시 후에 문자가 하나 왔어. 발신자는 '엄마'.

'혹시 전화하셨나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했어.

'죄송합니다. 엄마가 쓰던 번호라 무의식적으로 눌렀나 봐요.'

그랬더니 다시 답장이 왔어.

'여쭤봐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혹시······.'

'네, 돌아가셨어요.'

몇 분이 흐르고, 다시 문자가 도착했어.

'그립거나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문자 남기셔도 됩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러지 못했어.

엄마, 가끔 못 견디게 문자를 보내고 싶을 때가 있어.

사랑한다고, 잘 있느냐고.

나는 오늘도 엄마의 안부가 너무나 궁금해. (p.75)


박애희_<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中




서점에 서서 무심코 집어 들어 읽었던 페이지. 후드득 눈물이 흘렀다. 누가 보면 엄마 돌아가신 줄 알겠네, 생각하면서도 계속 훌쩍였다. 책 위로 눈물이 떨어져 버려 책은 구매했다. 집에 돌아와 처음부터 책을 읽다가 다시 이 페이지에 머물렀을 때는 울지 않았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책도 같은 장면에서 늘 똑같이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다.  서점에 서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생각해봐도 딱히 감상적일 이유는 없었는데···


아버지가 쓰시던 전화는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문자도 쓰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버지랑 문자를 했던 기억이 없다. 전화를 걸어본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살가운 부녀 사이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전화는 해지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에 새로운 친구가 떴다. 아빠였다. 여전히 나에게 아빠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 애틋하다거나 슬프지 않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됐었다. 아빠는 사라졌는데 아빠의 번호를 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랐었다. 그리고 이내 잊었다. 추억이 많지 않다는 건 과거의 시간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엄마는 휴대폰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으시다. 가끔씩 내 스마트폰을 구경하는 엄마에게 '전화 하나 해줄까?' 하면 '맨날 집에 있는 사람이 뭐 한다고 돈 내고 그걸 가지고 있냐?' 손사래를 치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집으로 전화를 걸면 받는 사람이 엄마 한 사람뿐이니,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가면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의 안부를 확인한다. 아버지가 계실 땐 잘 하지 않던 일. 문득, 엄마가 돌아가시면 아무도 받지 않을 집 전화는 해지할 테고 번호는 영영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만의 번호가 없었다는 사실이, 다정한 문자 한줄 남아 있지 않음이 서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에 집이라고 되어 있는 이름을 엄마라고 바꿔보지만 자꾸 허전한 마음이 된다.


서점에 서서 나는 아마도 누군가의 번호가 되어버린 아빠의 전화번호와 그마저도 없을 엄마를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을 해서 눈물이 난 게 아니라 그런 나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눈물 나게 했을 것이다. '엄마, 휴대폰 하나 해줄까? 엄마도 문자도 배우고 그래서 나랑 문자도 하고 까꿍(엄마는 '카톡'소리가 '까꿍'소리로 들리시는지 내가 카톡 소리를 못 듣고 뭔가를 하고 있으면 '까꿍 왔다, 전화 봐봐라' 하신다.)도 할래?' 서점에서 눈물 흘리고 돌아온 날, 지나가는 말인 듯 넌지시 다시 물어봤다. 역시나 즉답이 돌아온다.


'돈 아깝다. 맨날 집에 있는 사람이 뭐 한다고!'


엄마, 그래도 나는 돈보다 엄마랑 보내는 하루하루 시간이 아까워. 아빠가 애틋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추억이 없어서라고 생각해. 어차피 후회는 하겠지만 그나마 작은 일상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날치 추억을 쌓는 일일 거야. 마음속으로만 가만히 말해본다.


정해진 답을 따라 온순하고 착실하게 사는 일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종종 궤도를 이탈하고 싶었고,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어느 길이 맞는지 방향을 찾지 못할 때, 저 길 끝 어딘가에서 이정표처럼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러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p.56)


이상한 일이다. 살아 계서도, 돌아가셔도, 같이 살아도, 따로 살아도, '엄마'라는 단어 안에 담긴 모든 감정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은 결국 슬픔이 바탕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슬픔은 아마도 사랑과 같은 말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점에 서서 엄마와 관련된 책은 읽으면 안 된다. 알고 있었는데 자꾸 집어 들게 된다. 다시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