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낭만 Jun 24. 2023

빛나는 아이돌과 퍼즐 조각 사랑




아이돌을 한 번이라도 열렬히 좋아해 본 사람은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십 대 시절, 나의 전부를 내어줘도 아깝지 않았던 사랑이 있었다. 특정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면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그룹이 활동 중인데, 나에게는 ‘샤이니’가 그렇다. 아이돌에 대한 정보가 희박했던 부모님조차, 나와 언니가 하도 ‘샤이니, 샤이니’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지켜보아서 그런지, 다른 그룹은 몰라도 샤이니의 전 멤버만큼은 잘 알았다. 정말이지 사람을 이렇게나 깊고 오래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속에서, 나는 이 질문의 답을 빠르게 찾았다.


바야흐로 2009년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 행사에 샤이니가 초청 가수로 온 적이 있었다. 이미 화려하고 특출 난 아이돌 그룹이 몇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잘생긴 오빠들’에 불과했고, 큰 흥미가 없던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운 좋게 무대 바로 앞 스피커에 서 있던 나에게 운명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머리를 찰랑거리며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샤이니 멤버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짧은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을 발산하는 미소년들을 보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온갖 아름다움과 빛과 에너지를 받은 사람은 난생처음 보았기에 감탄, 아니 충격이라는 단어가 더 알맞을 정도로 넋을 잃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그 순간이 사랑에 빠진 순간이라 확신했다.


사랑에 빠졌으니, 이제 이 사랑의 부피를 키우고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일단 시간과 거리를 따져 보았을 때, 지방에 사는 내가 직접 샤이니의 무대를 보러 갈 수는 없었다. 그럴 용기가 없기도 했다. 대신 그들이 나오는 음악 방송이나 예능을 전부 다 챙겨보았다. 이미 봤던 무대 영상이나 프로그램을 지겹도록 보고 또 봤다. 또한, 잡지에 나온 샤이니의 모습을 잘라서 책상에 붙여 놓았고, 그 사진으로 필통을 꾸몄다. 겨우 손에 넣은 브로마이드는 구김 하나 없도록 벽에 걸었다. 멤버들의 생일을 달달 외웠고, 미니홈피의 bgm은 샤이니의 곡으로 무리 없이 선택했다. MP3에는 온통 샤이니 노래만 다운로드하였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샤이니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샤이니의 매 순간을 공유하고 울고 웃었고, 언제나 바라만 봐도, 언급만 해도 설레게 만드는 샤이니가 있었다. 거의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오빠들이 하루하루를 반겨주고 함께 해 주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면, 처음 구입한 샤이니 앨범이다. 추운 겨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음반 가게에서 나는 탈탈 턴 용돈으로 ’Year Of Us'를 손에 넣었다. 유독 그 앨범을 좋아했던 이유는 사자마자 너무나도 기뻐했던 내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간절히 원해서 결국 품 안에 넣었던 앨범. 나에게는 앨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지금은 구겨지고 바래졌지만, 버릴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랑하는 물건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감히 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빠듯한 공부, 어렵기만 한 친구 관계, 내 것 같지 않은 마음. 사사로운 것까지 외롭게만 느껴졌던 날들이 쌓여갈 때마다 나는 미디어 속 소년들의 웃음을 공짜로 빌렸다. 그로 인해 자잘한 조각들마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샤이니가 컴백하는 순간에 소리를 지르다가 선생님께 주의를 들었던 일, UFO타운으로부터 받은 멤버들의 문자, 핸드폰 갤러리를 꽉 채웠던 그들의 사진, 저화질임에도 또렷하게 보였던 영상 속 표정, 동작 하나하나까지 기억나는 춤사위, 스피커를 찢을 정도로 쩌렁쩌렁했던 목소리, 시처럼 아름다웠던 가사. 그 모든 것들이 누적되면서 나는 조금씩, 이 사랑의 힘을 신뢰했다. 그 덕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버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다. 가끔은 어린 마음에 그들이 너무나도 멀리 있어서, 현실감이 없다는 점을 인지할 때면 큰 괴리감이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곧바로 망각해 버린다. 그럴 시간조차 아까웠다. 어릴 때는 시간의 무한함을 알고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독 샤이니를 깊게 좋아할 때는 오히려 반대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조급함, 당장 이 감정에 지배당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울타리를 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말릴까. 나에게는 오직 그들의 음악을 듣고, 몸짓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재’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다 커버렸다. 세상 물정을 알고, 계산적인 생각을 하고, 순수함을 지키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예전처럼 열렬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감히 시작할 수 없는 현재가 기어코 찾아오고 만 것이다. 어린 나의 현재는 온통 조건 없는 사랑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다시 그때처럼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기엔, 내가 이미 자리 잡은 직장, 또는 앞으로 더 채워나갈 능력, 소중한 가족과 친구,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염려와 경계심, 주변의 시선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넘친다. 언제나 순위가 앞쪽에 배치되었던 그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대신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힐링이 필요한 시기에 그들을 찾기로 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이 말을 듣는다면, 이해타산적이라며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런 방편이 최선이다. 씁쓸하지만, 이건 누군가를 내 기억에서 완벽히 지워버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확실한 건 나는 그들에게 많은 순간을 빚졌다. 그러니 그 고마움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평생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낯선 타인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데리고 가는 힘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인생 전체를 큰 퍼즐로 본다면, 아이돌 그룹은 특정 시대를 거쳐간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선물하는 존재다. 가끔 어른의 삶이 버거울 때마다, 그들이 준 퍼즐 조각을 살펴본다. 그러면 아주 조금, 살 맛이 난다. 이 자리를 빌려서 남들에게 기쁨을 주는 직업을 가진 그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보낸다.


빛나기 바빴던 사람들을 마구 좋아했던 일. 받은 애정이 많아서 분출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던 시기. 내가 그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했던 이유는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다. 맑은 눈과 해맑은 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 뜨거운 조명과 촉박하고 피곤한 스케줄 강행에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던 모습, 사랑을 받은 만큼 줄 줄도 알았던 고운 마음씨가 그 이유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관찰하던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봐도 봐도 새로웠다. 결국 나에게 샤이니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어여쁜 사람들이자 그들이 가진 모든 행복이 영원하길 바랐던 최초의 타인이었던 셈이다.


아마 그들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조금 슬픈 일이다. 사랑을 줘도, 제대로 받고 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니. 그럼에도 좌절하지는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오빠들’만 부르짖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샤이니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무대 영상을 본다. 잊고 지낸 퍼즐 조각을 발견하니, 새삼 추억의 강인함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변치 않는 마음이 있다면, 샤이니가 어느 곳에서라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것. 10년 넘게 사랑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건넬 수 있는 선물이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말 그대로 ‘아주 멀리서’ 그들을 응원하고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물리적 거리로 따졌을 때, 정말 멀리서 바라볼 예정이다. 뒤에서 박수를 쳐주고 응원해 주고 따사로운 미소를 보낼 것이다. 어린 사랑이 변치 않을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해줘서 참 고맙다.




데뷔 15주년, 축하해요.





이전 06화 플레이리스트와 찰나의 여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