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에서 조금씩 사랑에 빠진 계절. 8월에 태어난 나는 원래 여름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다. 체질상 워낙 더위를 많이 타기도 했고, 여름만 되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피서니, 여름날의 사랑이니 온갖 낭만과 여름을 엮어서 좋아라 하는데, 나는 도무지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시원한 에어컨을 찾아 다니기 바쁠 뿐이다.
참고로 나는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를 좋아한다. 뜬금없이 무슨 헛소리인가 싶지만, 계절마다 상황마다 듣는 노래를 아카이빙 하는 행위는 내가 가장 즐기는 행위 중 하나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홀로 마음을 달래곤 하던 취미가 점점 많은 카테고리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 즐거운 취미 생활에서 여름과 관련된 플레이리스트는 단 한개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처럼, 나는 우연히 마주친 경험으로 인해, 습하고 후덥지근한 여름을 기다리게 되고 말았다.
부모님 댁은 원주의 한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다. 내가 이십 대 초반일 때, 아빠의 고향으로 다 같이 이사를 가서 지금까지 부모님이 쭉 살고 있다. 나와 언니는 서울에서 지내다가 휴식이 필요하면, 좋은 공기와 부모님의 안락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원주집을 찾는다. 그곳에는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이 있고, 아빠가 사 온 큼직한 스피커가 있고, 뜨거운 햇살을 쬐는 초록빛 잔디가 있다. 나는 초록빛 풍경을 보면서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후회없이 듣곤 했다.
스스로 정한 휴식기를 통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최악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워하는, 그런 모순 속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원주집에 와주었다. 얇은 옷차림을 하고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우리는 1층과 2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엄마와 아빠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깔깔거렸다. 승부욕에 미쳐서 할리갈리를 하기도 했고(종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노란 옥수수를 먹으며 내리쬐는 햇살과 어울리는 노래를 듣기도 했다.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굳이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잔디밭에서 뛰고 구르고 포즈를 취하며 유난을 떨기도 했다.
휴가의 백미는 아빠가 미리 알아봐 둔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간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고등학교 때처럼 폴짝거렸다. 큼지막한 거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화장을 했고, 어제 생각해놓은 옷을 입으며 서로에게 완벽한 리액션을 선사했다. 미리 준비해둔 물총을 잊지 않고 챙기면서 세 명씩 차에 나눠 탔다. 겉보기엔 다 컸지만, 다같이 모이기만 하면 우리는 여전히 미성숙한 고등학생 같다.
사사로운 여름 에피소드를 나열할 때마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생생하다. 우리는 데이먼스 이어의 ‘josee!‘와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아이즈의 ‘너와의 추억은 항상 여름 같아’, 너드 커넥션의 ‘좋은 밤 좋은 꿈’, zunhozoon의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Nikki Yanofsky의 ‘Waiting On The Sun', 영화 <바다가 들린다>의 OST인 'First Impression'과 ‘A Girl's Thought'를 들었다. 여름이 그렇게 특별한가? 계절의 특별함을 놓고 보면, 나는 가을과 겨울이 주는 쓸쓸한 향기를 더욱 선호하는 편이었다. 여름에 만드는 추억이란, 땀에 쩔어서 냄새나고 불쾌한 것. 당시 나에게 여름날의 추억이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름에는 여름과 어울리는 곡을 들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고집에 이끌려서, 내 귓가에도 여름이 물들고 말았다.
노래가 사람을 유혹한 것인지, 우리가 만든 추억이 달콤한 것인지는 불분명해도, 그날 이후로 여름과 어울리는 노래를 내가 먼저 찾아보게 되었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나는 한 문장을 떠올렸다. '찰나의 여름도 사랑인가.' 답답하고 울적한 시기를 통과하면서 예상치못하게 친구들과 추억을 그려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스피커 앞에서 무릎을 구부리며 귀를 쫑긋했던 노래를 통해 사랑을 재확인했다.
사랑의 형체를 몰라서 부재한다고 여기더라도, 어느 순간 가슴에 차오르는 몽글몽글한 감정은 사랑이 분명할 것이다. 그만큼 나를 다시 끌어안아준 건 없었으니 말이다. 싫어하는 계절을 좋아하게끔 만들어준 것도 사랑일 테다. 짧았던 여름휴가는 찰나였고, 그 찰나는 순식간에 사랑을 탄생시켰다. 덕분에 나는 죽기 전까지 품을 수 있는 따사로운 낭만을 얻게 되었다.
기존의 플레이리스트는 온통 어둡고 울적한 노래들로 가득했다. 당시 내 기분 상태가 그랬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의 여름도 온통 먹구름이 가득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삶의 궤적은 처음 만지는 크레파스로 긋는 것이 맞는가 보다. 이제는 피부에 닿는 습기와 열기가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심장을 달궜던 노래, 각자의 핸드폰에서 신나게 꺼낸 주옥같은 여름 노래들. 덕분에 청량하고 덥고 땀을 흘리는 노래들이 거무죽죽한 플레이리스트에 얹어져서, 나의 보라색 심장은 푸른빛을 선물 받게 되었다.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지는 사랑을 새삼스레 떠올려본다. 열기가 얼굴로 모여들었다. 비록 후덥지근한 여름에 일말의 더위도 허용하지 않지만, 내 눈을 덥게 만드는 사랑은 환영이다. 옥수수를 먹으면서 흥얼거렸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아련해지게 만들었던 노래를 하나씩 저장했던 날을 다시 상상했다. 그리고선 나는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을 단숨에 정했다. <찰나의 여름도 사랑인가>. 돌아오는 여름마다, 그 찰나의 사랑을 떠올렸다. 상처를 온몸에 매달고 다녔음에도 왜인지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던 시기. 나는 이번에도 마음을 비워두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또 다른, 찰나의 여름을 만들 생각이다. 이건 손가락을 걸며 한 약속은 아니지만, 절대 번복하지 않을 맹세이다.
이 사랑이 증발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먼저 내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은 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의 찬 기운이 지겨워질 때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벌써부터 장마가 걱정이기는 하지만. 아, 사실 장마는 끔찍하게 싫다. 작년보다 덜 질척거리는 여름이 되길 기도할 뿐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너와의 추억은 여름 같아.” 여름날의 노래 제목을 삐뚤게 조합해 보자면 이렇다. 남은 건 사진 몇 장과 시끄러운 영상, 점점 희석되는 기억이 전부지만 ‘여름’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낭만은 오래 머물고 있다. 최악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결국 제 발로 다시 사랑에게 찾아가게 만든 그 해 여름이 나에게 준 기회를 붙잡고 있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는데, 생생하게 붙잡고 있는 우리들의 여름을 앞으로도 간절히 믿기로 했다. 이제 여름을 싫어하기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이번 여름도 잘 부탁한다. 불행한 일만 벌어지지 않기를. 찰나의 사랑은 여름. 매년 돌아오는 사랑을 반갑게 마주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