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는 타는 냄새에 잠이 깼다 초의 명목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상 머리칼이 타는 일은 숙명이라 들었지만 들어서 예감하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달랐다 머리 꼭대기에 놓인 불이 모가지를 녹이기 시작하자 양초는 발 아래에 쌓이기 시작하는 끈적한 제 살점들을 볼 수 있었다
우왕좌왕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어라 지껄여댔다 배전반을 찾아봐, 차단기가 내려간 거 아닐까 아냐 이 일대가 다 정전인 거 아니야? 자기만의 의문과 그들만의 해결책을 찾는 그들은 제 살점에 파묻힌 발을 보는 양초의 마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양초는 이제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따뜻함을 선사해야 하는 것으로 태어나 따뜻함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따뜻함을 느끼며 죽고 싶었다 어차피 타들어가 녹아버릴 삶이라면 그래도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게 좋았을 텐데 피차 어둠을 밝힐 거라면 행복한 순간에서 죽고 싶었다 사라질 가치가 있는 목숨이 되고 싶었다 형광등 대용 오백 원짜리 임시 불빛으로 무관심 속에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가
발치에 떨어진 살점들이 이제 제 키보다 높아졌을 무렵 양초는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있었음을 알리는 것들이 남았구나 나는 여기 틀림없이 존재하다 죽었구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그 시간 동안 빈틈없이 분주하던 사람들이 지쳤는지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양초는 가슴께가 다 녹아 없어졌지만 마음이 분주해졌다 곧 나는 다 타들어가 꺼지고 말 텐데 곧 내가 끝이 나면 다시 어둠 속에 갇힐 텐데,
더 이상
도와줄
내 몸이 남지 않았는데
양초의 타들어간 머리카락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몸을 녹이던 불도 역시나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사람들 중 하나가 어, 꺼졌네 하고는 다른 양초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할 때였다 빛이 깜빡 하더니 형광등에 불이 들어온다 방 안을 빛이 가득 채우자 다른 한 사람이 다행이다, 하고는 케익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 이제 파티할 수 있겠다
여러 개의 생일초들이 녹기 시작할 때쯤 누군가 말한다
빨리 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