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을 것 같으면 일단 해보는 편이에요

인터뷰 ① 경희대학교 <주제연구> 수업 (2025, 김은회)

by 오늘도 지금처럼

전공 학과 및 독립(심화)연구를 통해 체득한 지적 역량을 수렴해 학술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수자와 학습자가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을 융합해 보다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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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 11. 05 / 주제연구 수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금성, 은회, 지유








금성과 지유는 국제개발협력과 아동복지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제철 과일을 활용한 건강한 디저트로 계절별 자기돌봄 경험을 제공하는 웰니스 브랜드 ‘과일도’라는 로컬 브랜딩 프로젝트로 청도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청도혁신센터에서 일하며 ‘청도군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로컬 라이프를 느리고 여유로운 풍경으로 떠올리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솔직하다. 로컬 콘텐츠에서 흔히 보는 낭만적인 시골 생활이 아닌, 고민하고 부딪히며 적응해 나가는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시작의 순간


| 로컬이라는 새로운 재미

지유에게 로컬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 떠오른 분야가 아니었다. 소음이나 냄새같이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은 공간은 늘 버거웠다.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역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낸 적도 있어요. 그때 직감했어요. ‘아, 나는 무조건 사람 적은 곳에서 살아야겠다.’ 사회복지, 국제개발협력, 아동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지만, 일을 하며 느낀 건 생각보다 원칙주의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NGO가 나랑 잘 맞나?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로컬로 간다면 지금이 적기일 것 같았어요.”


KakaoTalk_20251130_190551416.jpg 2023. 06. 23 / 지유가 처음 방문한 로컬, 충청남도 홍성에서


금성의 시작 역시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금융을 전공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큰 회의감이 생겼다. “내 돈 굴리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남의 돈을 굴리지? 그러다 우연히 국제개발협력 특강을 듣고 시야가 확 열렸죠.” YP, 봉사단 활동을 하며 커리어 전환을 준비했지만,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려면 추가 학위와 해외 경험이 필요한 현실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강화도 같이 가자는 지유의 제안에 금성은 로컬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사실 저는 시골이나 로컬에 대한 로망이 없었어요. 시골은 그냥 가족 보러 가는 곳이었으니까요.” 가족이 아닌데도 따뜻하게 외지인을 환대해 주는 마을의 정을 경험하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곳’이었던 시골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KakaoTalk_20251130_190928829.jpg 2023. 07. 12 / 처음 함께 한 여행지였던 강화도에서



| 청도는 우리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유는 홍성, 남해 등 여러 마을들을 다니면서 ‘내가 살 만한 곳이 어디일까’ 사전 조사를 다녔다. 홍성은 이미 청년 커뮤니티가 탄탄했고 남해는 판이 너무 잘 짜여 있어서 오히려 재미가 덜했다. “로컬 탐방을 다니면서 ‘시골에서는 농사만 짓고 돈 버는 게 아니구나’를 배웠어요. 로컬에서도 내가 원하는 걸 실현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경기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로컬 창업을 시작하게 됐죠.” 기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하자를 목표로 로컬창업의 소재를 찾았고, ‘과일’이 둘의 공통점이었다. 과일로 유명한 지역을 찾으면서 청도를 알게 되었다. 청도에 방문한 둘은 곧바로 지역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 복숭아에서 반시로

‘과일도’의 첫 목표는 복숭아였다. 둘 다 복숭아를 좋아했고 청도 역시 복숭아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 팝업을 계획한 것이 문제였다. 일정은 고정된 것이라 바꿀 수 없었기에 둘은 곤란함을 겪었다. “가을에는 복숭아가 없어요. 그걸 뒤늦게 안 거죠. 농부님이 ‘얘네 아무것도 모르네’ 하시면서 청도에는 반시라는 청도에만 있는 감 특산물이 있으니까 그걸로 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지유는 농부님들 덕에 해결되어서 다행이지, 자신들의 어리숙함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라며, 한 가지 비하인드를 말하자면 우리 둘은 감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KakaoTalk_20251130_192843059.jpg 2024. 10. 17 / 반시 수확을 돕던 지난 가을



| 귀촌 앞에서 마주한 가장 큰 걱정

누군가는 귀촌을 ‘과감한 결단’이라 말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훨씬 더 복잡하다.

금성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장 큰 걱정으로 꼽았다. “지유와 같이 살고 직장도 같으니 24시간을 붙어있는데, 사이가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농부님들이랑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가장 컸어요.” 교통도 걱정이었지만 금방 해결됐다. 서울에서는 출퇴근이 1시간 넘게 걸린 반면, 오히려 청도에서는 걸어서 20분이면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며 좋다고 했다.


지유는 “평생 이렇게 고민한 적 없다”라고 했다. 대학교 원서 쓸 때보다도 더 고민했다고 한다. NGO에서의 첫 경험이 기대와는 달라 힘들었던 기억, 로컬 탐방에 쏟아부은 시간, 귀촌 후 괴리감이 생길 가능성. 그 모든 것이 불안했다. “그런데 제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재미’거든요. 다른 거 다 모르겠고, 이게 재미있을 것 같은가? 그럼 그냥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청도에 방문해 보니 ‘청도에 살게끔 누가 판을 짜 놓은 것처럼’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지금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청도 귀촌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10 중에 1이 재미고 9가 위험인 상황이어도, ‘내가 언제 시골에서 한번 살아보겠어’ 하는 생각으로 청도 귀촌을 결정했다.


KakaoTalk_20251130_193639506.jpg 2025. 02. 05 / 귀촌을 준비하며, 각자가 청도에서 지켜내고 싶은 가치





[2] 적응의 과정


| 새벽에 해 뜨는 걸 보면서 ‘우리 가지가지한다’고 웃었어요

청도 귀촌 전,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지유는 과일도 팝업 준비를 위해 밤새 반시 디저트를 만들며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몇백 개의 물량을 준비해야 했지만 초보라 손이 너무 느렸다. “새벽에 해 뜨는데, 그 풍경 보면서 ‘우리 가지가지한다’며 사진 찍고 웃었어요.” 그때 이미 두 사람은 힘든 순간도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청도 농부님, 사장님들이랑 떠들 때도 즐거웠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뭔 얘기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좋았어요. 청도는 실제 인구가 남자가 많거든요. 서울에서는 경계해야 할 일들이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초대받고 얘기하고. 그냥 청도에 귀촌하기 전인데도 청도라는 지역에 스며든 게 느껴졌어요.”


2025. 03. 16 / 지유의 생일날, 딸기 농장에서

청도에 완전히 내려온 뒤 지유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생일날 처음 간 딸기 농장이었다. 지유는 생일 아침 7시부터 4시까지 딸기를 땄다. “농장에 갈 수 있는 날짜가 하필 생일밖에 없었어요. 외식하고 싶었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배달 음식을 먹었죠. 근데 그게 또 묘하게 좋았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생일 축하의 형태였고, ‘청도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파티겠구나’ 생각하며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1년 연장했으니 내년 생일도 청도에서 맞겠지만요. (웃음)”


2024. 12. 28 / 남해 상주 은모래비치에서

금성은 과일도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남해에서 2주 머물렀는데, “바다를 하루 종일 보는 게 행복해서 처음으로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귀촌 후에는 수도권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나도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청도에서는 또래 친구랑 친해지기보다 다른 연령대랑 친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새로운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점점 친해져서 나도 모르게 "자자~ 저녁 먹을 사람~" 하면서 튀어나올 때요.”




| 낯설었던 것들, 버거웠던 순간들

귀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포장되지는 않는다. 금성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어려움은 경상도 사투리였다. “진짜 못 알아들을 정도로 빠른 분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수도권 애들이 왜 내려와서, 내려왔으면 적응해야지. 왜 자기네들 어투를 고집하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투리 말고도 어려움은 많았다. 금성은 안정을 중요시하는 성향인데, 적응할 만하면 또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 “4월 내내 감기처럼 몸이 아팠어요. 내가 선택한 변화는 괜찮은데, 선택하지 않은 변화가 너무 많으니까 몸이 못 버티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도망치듯 집에 갔어요.”


지유도 청도혁신센터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시기를 떠올렸다. 전반적으로 센터는 매우 바쁜 상황이라 온보딩 기간 없이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이외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고 자주 얼굴을 맞대는 만큼 둘은 어색해도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맞춰갔다. 특히 같이 기획한 ‘콘츄리클래스’를 하면서 서로 일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조율될 수 있었다.

P20250726_100505000_5886D990-73B8-41D8-9996-37931FB3C1D6.jpg 2025. 07. 26 / 콘츄리클래스 프로그램 중



| 청도에 와서 온전히 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청도에서 ‘쉼’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반시가 유명한 청도는 가을에 행사가 많고 일이 몰린다. 다른 계절에도 여러 사업을 꾸리느라 주말 출근도 더러 있었다. 그럼 이들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쉬는 걸까.

“쉰다고 하면... 텃밭 갔다가 친구네 가서 놀기? 자전거 타고 바람 쐬기?” 금성은 서울에서 쉬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다고 답했다.


KakaoTalk_20251101_223804741_10.jpg 2025. 11. 01 / 자전거 타고 바람을 쑀던 순간


지유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3월에 내려온 이후로 ‘아, 지금 쉰다’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대신 짬짬이 작은 순간에서 행복을 느껴요. 하늘, 공기, 자전거 타는 시간 같은 것들.” 청도에서 사귄 친구와의 만남, 서울에서 내려오는 지인들과의 약속도 있지만 요즘은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인스타나 브런치에 좋은 것만 올리다 보니까 사람들이 멋있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줘요. 근데 사실 울면서 버틴 날도 되게 많아요.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무궁무진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청도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을 조금 더 지키고 싶어요.”




☁︎ 기록한 사람 | 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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