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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학기말 밀크티 파티

 학기말 밀크티 파티 

 1교시 수업 중 갑자기 동료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생들이 이두리 선생님을 찾고 있다며, 어디냐고 묻는 소리에 황당했다. 어디긴, 수업중이지! 


 지난번 출장 때문에 못한 말하기 수업을 보강하는 날이었다. 수업을 보강하면 원래 사용하던 강의실을 사용 못하고 다른 곳으로 변경해야 한다. 지난주에 이미 장소를 공지했고 혹시 확인 못한 학생들이 있을까 싶어서 수업 전에 본 강의실에 가기다리기까지 했는데! 이제야 연락 오는 걸 보면 분명 지각생들이구먼.  


 동료 선생님께 현재 강의실 위치를 알려드리고 조금 기다리니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로 들어왔다. 아니 이게 뭔가 싶어서 당황한 것도 잠시, 정황을 물으니 내가 이메일로 공지한 강의실이 다른 곳이었다고 한다. 믿을 수가 없어서 이메일을 확인해보자, 아뿔싸! 오늘과 내일의 강의실이 다른데 그만 내일 강의실 호수만 알려준 것이었다. 그러니 학생들이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선했다. 얼굴을 보니 평소에는 지각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다. 내 멋대로 단정 짓고 잠시나마 괘씸해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실수를 인정하며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래도 이 더운 날 반시간 넘게 나를 기다렸을 생각을 하니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이 대화문을 연습하는 사이 학과 사무실로 돌아가 지갑을 확인했다. 혹시 현금이 없으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5만 원 가량의 현지 돈이 들어 있었다. 반에 있는 학생 수가 열일곱. 무엇을 사먹든 이 돈 안에서 해결이 될 것 같아서 기분 좋게 강의실로 돌아갔다.


 학생들에게 나 때문에 더운 날 오래 기다렸으니 시원한 음료를 사주겠다고 했다. 화색이 도는 것도 잠시,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우물쭈물하다가 콜라란다. 그런 거 말고 더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하니 대답을 못한다. 그러다 한 학생이 용기 내어 ‘밀크티’라고 말한다. 밀크티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베트남 청춘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음료다. 2016년과 17년에는 홍차에 복숭아 시럽과 황도를 띄운 ‘짜 다오’가 유행했었고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는 밀크티가 대세란다. 


 용기를 칭찬하며 얼른 주문하라고 하니 서로 눈치만 본다. 부러 오늘 공부할 거 많다고, 수업해야 되니까 얼른 시키라 재촉해도 선뜻 움직이는 이가 없다. 으이구 이 답답이들! “자꾸 그러면 안 시킨다? 그냥 수업해요?”하고 엄포를 놓으니 입을 모아 “그럼 (옆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하나 마실게요. 너무 비싸요.”하는 게 아닌가!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주저하는 학생들에게 오늘은 말하기 연습을 많이 할 테니 힘내야 한다며 각기 한 잔씩 시키자고 했다. 


 주문 전화를 넣을 때부터 설레서 집중하지 못하더니 도착했다고 연락이 옴과 동시에 다들 신이 났다. 학생 한 명을 지목해서 다들 대화 연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한 다음 계산하러 내려갔다. 순간 35만동(17500원)을 350만동(17만원)으로 착각한 나머지 카드를 꺼냈다가 당황해하는 배달원을 보고 덩달아 당황하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놈의 숫자는 베트남에 온지 어언 7개월이 넘었는데 아직까지도 헷갈린다. 


 교실에 올라가 갓 배달 온 시원한 밀크티를 나누어주자 다들 신이 났다. 밀크티를 부여잡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아마 이 사진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라갈 거고 ‘우리 선생님이 사줬다!’하는 자랑스러운 글도 첨부될 터다. 요놈들아, 그럼 내 실수가 만천하에 공개되잖니…. 민망한 기분도 잠시, 잔뜩 신이 난 아이들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무렴 어떠랴. 내 자존심보다 더 귀한 아이들인데…! 


 시원한 밀크티를 먹여 놓고는 쉬는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돌렸다. 기말고사 대비 시간이었기에 알려 주고 싶은 게 많아 마음이 급했다. 그동안 배운 문법으로 문장 만들기를 시키고, 주제를 던져주어 발표하게 하고, 쉴 틈 없이 질문하고 등짝을 때리고 맞장구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한 학기가 이렇게 끝나간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가르친 아이들이라 그런지 유독 정이 많이 간다. 다음 학기에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나야 그저 배정되는 학년을 맡는 것이니 이 학생들과 함께 할 시간이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한 수업을 끝내자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수업이 이어졌다. 시작 전 한 학생이 들어오더니 내게 ‘짜 다오(복숭아티)’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자기는 오늘 수업을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는데 그동안 감사했다며 드리는 거란다. 작은 쪽지도 들어 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네요. 그동안 선생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게 돼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혹시 선생님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동안 매주 수요일 수업에 열심히 일한 선생님의 모습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고 나중에 선생님처럼 성실한 사람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학기 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 수업 중간에 나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오던 얼굴이다. 그때 지금 당장의 아르바이트도 중요하지만 이번에도 낙제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타이르는 내게 ‘사는 게 힘들어서… 이해해주세요. 다음 수업부턴 열심히 할게요.’하고 넉살 좋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간 아르바이트한다고 수업에는 잘 안 나오면서 시험 문제 쉽게 내달라고 조르는 게 은근 얄밉기도 했었는데, ‘열심히 공부하면 쉬울 거예요.’하는 내 말에 진짜 열심히 공부하기라도 했는지 시험을 잘 봐서 기특하기도 했다. 지난 4학년 사은회 때는 나와 같이 베트남 노래를 열창하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추억이 많은 학생이다. 급한 대로 나도 작은 카드를 만들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앞으로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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