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낭소리 Oct 15. 2019

[다낭소리] 말하기 반 포상 데이

 말하기 반 포상 데이

 오늘은 말하기 반 학생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 학기 초반에 ‘반에서 가장 발표를 많이 한 사람은 종강 후 고기를 사주겠다.’라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는 날이다. 메뉴를 고민하다 한국식 삼겹살로 골랐다. 드라마에 자주 나와 베트남 사람들도 좋아하는 메뉴다. 상추에 이것저것 가득 넣어 한 쌈 가득 싸먹는 모습을 신기해한다. 


 고기를 실컷 먹여 주려고 했는데 한 판 꽉 차게 굽고 나자 그만 먹어도 된다며 배부른 표시를 한다. 아니 이것밖에 못 먹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고기를 구울 때부터 연신 사진을 찍어 댔으니 됐다 싶다. 아이들이 만족했으면 된 거다. 


  사실 우리 학생들이 워낙 조용하고 숫기가 없는 편이라 수업 때마다 진땀이 난다. 같이 웃고 떠들기는 잘하면서도 한 명 콕 집으면 혀가 굳는다. 처음엔 얘네가 나랑 신나게 농담 따먹기 하던 그 애들 맞나 싶어서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 아플 거 없이 그냥 깔깔대다 수업을 끝내면 좋으련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기업 면접 시 다낭 애들은 활발한 하노이나 호치민 학생들에게 기가 죽어 말도 못 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어떻게 하면 수업 참여도를 더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처음엔 과자나 스티커처럼 작은 선물을 주었다. 그렇게 해도 늘 하는 사람만 발표하기에 하는 수 없이 ‘발표를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는 종강 후 고기를 사주겠다.’라는 선언을 했었다. 유치원에서나 쓸 법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좋았다. 


 저 유치한 공약을 내걸 때의 내 마음은 그랬다. 아이들에게 핑계거리를 하나 던져 주고 싶었다. 대학생이면 한참 예민할 시기이다. 수줍음보다도 친구 눈치가 보여서, ‘나댄다’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나서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 이 학생들도 그런 말을 한다. 손을 들 때마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겁이 났다고. 그러니 눈치 보는 학생들이 눈 딱 감고  ‘선생님이 밥 사준다고 했으니까, 저렇게까지 하니까 나도 반응해주는 거야.’하며 입을 열어 주길 바랐었다. 


 물론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는 수업인데 몇몇에게만 상을 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학자가 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통역 업무를 맡을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공약을 내건 이후 발표자가 많이 늘었고 예상치 못했던 학생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다른 이유로는 이렇게라도 아이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다. 워낙 수줍어서 밥을 사준대도 ‘괜찮아요!’하며 도망가는 아이들, 그렇게 좋아하는 밀크티를 사준대도 ‘비싸니까 두 명당 한 잔씩만 마실게요.’하는 아이들에게 부러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다 해줄 수 있는 날을 만든 것이다. ‘그간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으니 이쯤은 받아 된다.’라며 아이들 자존심과 기도 팍팍 살려주고. 내게 말 한 번 걸 때마다 긴장하는 아이들에게 원어민과 대화하는 기회를 주고도 싶었고. 


 학생들과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으레 ‘한국엔 언제 돌아가느냐’는 질문을 했다. 연장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에 내년 8월이나 내후년 8월쯤 될 거라고 얘기했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내후년에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웃으며 이유를 물어보자 내게 수업을 더 듣고 싶다고 했다. 다음 학기에도 내가 말하기 수업을 담당했으면 좋겠다고, 내 수업 시간엔 말할 기회가 많아서 좋다고 했다. 그럴 평가를 받을 만한가 싶어 부끄러워진다. 


 요새 학교 선생님들도 내게 연장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보고 주변에서 한국에 언제 돌아 오냐고 물어볼 때마다 고민이 된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며 전에는 ‘아직은 마음에 없는데 혹시 모르지.’하고 답했던 것을 지금은 명확하게 고민하고 있다. 1년은 지금 이 시기, 이 나이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고 단순히 한국에 돌아갈 준비가 안 되어서 하는 연장이라면 미련한 짓이다. 


 내가 고민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과연 내가 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느냐 하는 기본적인 문제였다. 만약 내가 가고 더 좋은 교사가 오는 게 낫다면 욕심 부리지 말고 떠나는 게 맞다. 그리고 아이들이 진정 나를 원하고 나에게서 더 배우고자 한다면 1년 정도는 더 머물러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1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니니까. 분명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성장할 테니까. 


 고기를 먹고 나서 2차로 카페에 갔다. 비싼 저녁을 내가 샀으니 차는 자기들이 내겠다며 서둘러 지갑을 꺼내는 모습이 귀여웠다. 종업원에게 “얘들은 학생이고 제가 선생님이에요.”하며 얼른 계산했다. 오늘은 선생님이 다 쏘는 날이니 고집부리지 말라며 등짝을 때리자 배시시 웃는다.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 했었는데 나도 아이들도 번갈아 질문을 하며 얘기하다 보니 어색할 틈이 없었다. 


 학생들의 고민도 들었다. 다낭에 관광객은 많지만 막상 한국인과 대화할 기회는 많이 없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몇 번 한국어로 말을 걸어 봤는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 돕고 싶은 마음에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며 시간 날 때마다 전화하라고 했다. 이미 다른 학생과 하고 있는 방법인데 처음엔 한 10분 통화했던 게 벌써 30분으로 늘어났다. 분명 효과가 좋은 방법인데 누차 말해도 막상 전화를 걸어오는 학생은 많지 않다. 아마 내가 피곤할까봐 못하는 거겠지…. 아, 난 정말이지 우리 애들이 한국어를 잘했으면 좋겠고 그걸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기말 고사가 끝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같이 놀러 가자는 말에 그러자 했다. 그동안 같이 놀러 가자는 학생들이 꽤 있었는데도 왠지 학기 중에 몇 몇 학생들하고만 어울리면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내가 먼저 어디 놀러 가자고 말하기도 쑥스럽고 또 집에 있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오늘 아이들을 만나면서, 서툴지만 신나게 한국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게 또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하랴 공부하랴 바쁜 아이들에게 맛난 밥 한 끼 사주는 것. 같이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들어주고 가능하다면 도와주기도 하는 것. 무엇보다 한국어로 말할 기회를 주는 것.  


 한 학기가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남은 시간만큼은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모로 지갑은 가벼워졌으나 마음은 두둑한 날이다. 요 며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날엔 잠이 잘 왔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소리 학기말 밀크티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