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둘인 임산부가 느끼는 두 가지 온도

by 디어살랑

임신을 확인하고 각 부모님들에게 임밍아웃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멀리 사는 친정엄마에게는 "나 임신했어."라고 카톡으로 담백하게 툭 던졌다. 그쯔음 시엄니와는 생신모임이 있어서 생신선물로 임밍아웃카드를 만들어드렸다. 이때부터였을까? 두 사람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졌던 건. 친정엄니는 꽃 이모티콘과 함께 '축하축하' 하고 축하인사를 건넸고 시엄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엄청 좋아하셨다.


시엄니는 우리 집에 가끔 방문하실 때면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한 박스씩 사 오신다. 임산부는 과일을 잘 먹어야 한다며 복숭아가 떨어질 때쯤 또 복숭아 한 박스를 가져다주신다. 덕분에 올여름 복숭아를 정말 원 없이 먹었다. 몸에 바르는 로션이며 임산부 영양제도 부지런히 찾아서 보내주신다. 혹여나 며느리 불편할까 싶어 집을 방문하셔도 자리에 앉기 무섭게 금방 집을 나서려고 하신다. 시엄니가 나에게 주시는 사랑은 팔팔 끓기 직전 온도인 99도 정도다. 느지막하게 생기신 손주가 너무 귀해서 열정은 넘치지만 팔팔 끓어버리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딱 끓기 직전의 온도.


반면 친정엄니의 온도는 60도 정도로 고기를 수비드 하기 좋은 중저온이다. 원래 생존신고 정도만 하고 살았는데 임신하고 부쩍 연락이 자주 온다. 하루동안 뭘 먹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제일 궁금해한다. 순수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 산모를 위해서는 요가를 다니면 좋니, 건강한 식단을 하기 위해 치즈가지구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레시피 일장연설을 하고, 김치 다 먹었어? 담가줄까? 하며 전화가 끝이 난다. 수비드를 하려면 중저온 온도에서 아주 오래도록 두어야 한다. 뜨뜻미지근하지만 잔잔한 온도가 친정엄니가 나에게 주는 사랑의 온도다.


남편 생일을 맞아 시엄니를 집에 초대했다. 임신하니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귀하게 느껴진다. 우리 남편도 시엄니가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뱃속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워내셨을 걸 생각하니 남편을 낳아주신 시엄니에게도 자연스레 감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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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시엄니를 위해서 조개미역국과 새우해파리냉채를 준비하고, 소고기 킬러인 남편을 위해서 소갈비찜을 준비했다. 시엄니께서 '나는 잘해준 것도 없는데...'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울컥하는 감정을 부여잡고 몽글몽글하고 맛있는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내내 남편과 시엄니 입맛에 잘 맞는지 살피면서 맛있다는 한마디에 배시시 웃게 된다. 남편피셜 소갈비찜이 내 요리 중에 1등을 등극했단다.


임신한 딸이랑 마지막으로(?) 여유롭게 놀자고 친정엄니를 집으로 초대했다. 일주일 동안 맛난 것도 해 먹고 즐거운 경험을 드리고자 초대했지만, 나는 엄마를 귀찮게 하더라도 소파에 드러누워서 엄마요리가 먹고 싶은 영락없는 막내딸이었다. 시엄니는 임산부의 몸으로 요리를 대접해 놓고 친정엄니한테는 대접받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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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입맛이 없으면 엄마가 호박잎에 된장을 싸서 먹여줬다. 임신하니 그걸 먹고 싶었다. 호박잎과 꽃게된장국, 생선, 각종 나물까지 건강한 밥상으로 엄마가 차려줬다. 정신을 못 차리고 금세 한 그릇 뚝딱했다.


비록 두 엄마가 주시는 사랑의 온도는 다르지만, 사랑의 방향과 결은 결국 같다. 어쩌면 두 분이서 주시는 사랑은 같은데 내가 다른 온도로 받아들이는 걸 수도. 뭐가 되었든 나와 남편을 임신기간 내내 잘 견디며 품어주시고 (두 분 다 심한 입덧이셨다.) 무사히 낳아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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