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전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면 늘 '임신이 뭐 별 건가' '임신의 장점이 하나라도 있긴 한가' '대체 임신해서 우리가 얻는 게 뭔데'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곤 했다. 돌이켜보니 사실 토론보다는 억울한 푸념에 가까운 말들이었지만. 내 관점으로는 임신은 생명을 잉태한다는 놀라운 점 제외하고는 죄다 단점 투성이었다. 임신을 하면 말도 못 할 정도로 괴로운 입덧부터 임신성 비염, 알레르기, 소양증, 허리부터 몸 전체에 오는 처음 느껴보는 통증들, 소화불량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몸의 고통들이 서로 아우성이다.
하지만 임신을 직접 해보니 생명을 품고 그 생명을 키워나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고 말았다. 임신 주수별로 산모 몸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태아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애플리케이션이 익숙하지 않다면 임신 관련 책을 봐도 아주 자세하게 하나씩 짚어준다.
이번주에 아기 뇌를 만들었는데, 다음 주엔 아기 콩팥을 만든다고...?
갑자기 소름이 우수수 돋기 시작한다. 내가 아기 뇌를 만들었다고? 아니 인간의 뇌를? 에일리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만화에서 말하는 초사이언이 된 것 같기도 한 기분이다. 내가 신이 된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직장에서 서류작업하고 비즈니스회의를 하던 나는 그게 내 인생에서 대단하고 중요한 일인 줄 알았는데, 한낯 회사일이 인간의 뇌를 만드는 일보다 대단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No다. 앞으로도 내가 죽기 전까지 그 어떤 일을 한대도 한 인간의 장기를 만드는 일보다 위대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뻗치니 임신을 하고 있는 내 몸에 대한 자부심도 같이 올라갔다. 나 정말 대단한 일 하고 있잖아? 좀 더 으쓱해져도 될 것 같고, 포동포동 살쪄가는 내 몸을 좀 더 아껴 줘도 될 것 같고.
임신 전에는 임산, 출산이 여자만 해야 하는 지독하게 끔찍한 생애과업이라고 생각했고 임신, 출산을 위해 만들어진 여성의 몸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생리하는 과정 자체도 애초에 임신을 위한 과정, 자궁이라는 존재 자체, 그렇게 열심히 생리하다가 폐경이 오면(아이를 가질 수 없는 시기) 또 몸에 유쾌하지 않은 변화까지 일어나니까 여성의 몸은 정말 평생 아기를 가지기 위해 준비하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버려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전환을 하고 나니 임신이란 건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절대 시도도, 노력도 할 수 없는 여자만의 유일한 능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자신의 자손을 남기고 싶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정자를 구해서 남길 수 있지만 남자는 절대로 스스로 자손을 번식할 수 없다. 그래서 동물세계에서도 수컷은 그 번식 하나만을 하고 죽기 위해 암컷의 몸을 빌려야 하기에 구애의 춤을 마구 추고 환심을 사기 위해 사냥감을 갖다 바친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성의 몸은 열등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는 여성일지라도 내가 선택해서 낳지 않는 것과 애초에 낳을 수 없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임신을 경험해 본 모든 이가 나에겐 위대한 창조주이며 조물주로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임산부들이 임신해서 피곤하고 늘어진 몸을 보며 우울할 때 잠시라도, '잠깐, 나 오늘은 아기의 뇌를 만들었어!' 하고 생각하며 잠시라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