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밤 깊은 대관령은 눈이 제법 쌓였다. 지금은 국도가 되어버린 옛 고속도로는 구절양장이었다. 낮에는 준령의 풍광이 운치 있지만 폭설에 밤길이라면 운전은 조심스러워진다. 동승자 네 명과 아침 일찍 나서 서울에서 일을 보고 당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체되지 않으면 서울까지 닿는데 편도 4시간 반 정도 걸리던 시절이었다. 남에게 내차를 맡기고 싶지 않아 오가는 내내 손수 운전을 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대관령 굽은 구간을 거의 다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전신주가 곧 부딪칠 듯 코앞에 나타났다. 앗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난 반사적으로 핸들을 왼편으로 꺾어 충돌을 피했다. 피곤해 지쳐 잠들어 있던 동승자들이 모두 놀라서 깼다. 나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커브길 코스가 끝나면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감겼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한 기억이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갓길 전신주에 부딪히기 직전에 어떻게 잠에서 화들짝 놀라 깰 수 있었을까. 당시 누군가 눈 앞에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존재하면서 나와 이어진 인격체 같았다.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나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이와 같이 위험한 순간을 면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운을 평생 단 한 번만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기적'이라는 말로 대표해 표현한다면, 지금의 나는 많은 기적들이 계속해서 일어난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나 역시 몇 번인가 사고로 이어질만한 상황을 기적처럼 피할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수많은 병원균의 침입에도 죽지 않고 기적처럼 살아있다. 물론 누군가는 기적처럼 운이 좋지 않아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런 기적은 자기 내부로부터 발현된다기보다는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서 도움받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내부로부터 발현된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적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삶을 성장시키는 뜻밖의 통찰은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내가 받은 은총과 기적들을 세어보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